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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회의 때는 빈 의자를 둬라

<110> 역지사지

전 연세대 교수

'자기 주장이 편파적일 수 있다'

깨닫지 못한다면 상대방 불신

타인 입장서 생각땐 모두에 이득

기업, 모든것 고객 관점서 봐야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두 학생을 마주 보고 의자에 앉도록 했다. 책상 위에 널빤지 하나를 세워놓았다. A에게 묻는다. “널빤지 색깔이 뭐지” “흰색입니다.” 반대편 학생 B에게 묻는다. “너는 무슨 색으로 보이니” “검은색입니다.” 선생님이 다시 물어도 답변은 역시 같다. 같은 널빤지인데 두 학생은 왜 서로 다른 색이라고 답할까. 만약 A와 B가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둘은 서로 불신하고 증오할 것이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두 학생의 자리를 바꿔보라고 한다. 두 학생은 그제야 그 이유를 알고는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이 같은 널빤지에 색깔을 각각 다르게 칠해뒀던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헤아리라는 선생님의 주문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독일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관점주의(perspectivism)다.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객관적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의 주장이 편파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전자는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겸허하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 반면 후자는 상대방을 불신하고 비난하고 증오한다. 공멸만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MBA 프로그램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20명의 학생을 2인 1조로 편성한다. 교수는 “5분 동안 팔씨름을 해서 각자 1승을 거둘 때마다 1달러를 주겠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부분의 팀에서 나온 성적은 기껏해야 4~5번 이긴 정도다. 격렬하게 팔씨름을 한 탓인지 얼굴이 다 일그러져 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 한 팀의 성적은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 다 100번씩 이겼다. 그것도 아주 밝은 표정으로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이 팀의 전략은 서로 협동해서 빨리 이기고 빨리 지고를 100번 반복한 것이다. 여러분이 교수라면 두 사람에게 약속한 대로 100달러씩 상금으로 주겠는가. 당연히 줘야 한다. 그 팀의 성적은 첫째, 게임의 룰을 숙지하고 둘째, 자신의 파트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역지사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이 불공평하면 그 룰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일단 게임이 끝난 다음 서로 합의하에 바꾸는 것이 맞다. 게임 도중 갑자기 불공정하다며 룰을 바꾸겠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합법을 가장한 반칙이다. 더구나 나한테 불리하면 불공정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하면 합법이라고 말하는 자세는 역지사지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다. 피의자의 인권을 마구 유린하는 검사가 있으면 우리는 “당신도 피의자가 한번 돼보라”고 말하고 싶다. 환자를 짐짝 취급하는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여성, 검사가 피의자, 선생이 학생, 리더가 부하, 의사가 환자 입장에 들어가서 생각해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역지사지는 모두를 이롭게 한다.



호주에는 큰 새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원주민 부족이 있다. 그들은 자식에게 사냥법보다 그 새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부터 시킨다. 날갯짓, 걸음걸이 하나하나 그 새와 똑같이 하도록 한다. 완전히 그 새의 입장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그 새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터득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에게 가장 먼저 그 회사의 고객이 되는 훈련부터 시켜야 한다. 고객에게 빙의될 때 비로소 훌륭한 비즈니스맨이 될 것이다.

미국의 한 회사는 회의할 때 항상 빈 의자 하나를 테이블에 가져다 둔다. 누구를 위한 의자일까. 고객을 위한 의자다. 우리가 회의하는 것을 고객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라는 회장님의 지시사항이다. 모든 것을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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