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 구호는 신선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비정규직 급증, 신규 취업자 급감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대내외 경제환경 악화까지 더해지면서 정부가 뒤늦게 궤도 수정에 나서자 이번에는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부가 주 52시간제 시행, 최저임금 급등 등 급격한 노동정책 변경으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시장·기업과의 조율을 통해 정책 내실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눈에 띄는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중소기업의 위기와 자영업자 몰락, 일자리 감소를 가져왔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임기 내 1만원 달성 공약을 포기하며 국민 앞에 사과해야 했다. 또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경제 타격이 현실화하자 경영계의 우려를 반영해 탄력근로제 개편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로 내놓았다.
정부가 고심 끝에 보완책을 제시했지만 노동계는 노동존중사회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경영계를 의식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널뛰기 노동 정책에 노사가 모두 불만을 터뜨리고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는 가운데 탄력근로제 개편안과 한국형 실업부조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등 주요 국정과제는 국회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내년이 총선인 점을 감안하면 올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서경펠로인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임기 초 정부가 정책 과속으로 주도권을 잃으면서 후반기에 접어들면 추가로 시장에 충격을 줄 정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 이미 시행한 정책의 부작용 최소화나 안착에 주력하라고 조언했다. 최 객원교수는 “정책 방향성을 180도 뒤집기보다 시장과의 조율을 통해 균형적 위치를 찾아가며 진정된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도 “지금은 행정적 차원에서 근로감독·산업안전 등 노사, 진보·보수 모두 문제 삼을 수 없는 분야의 개선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는 “정부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며 “현 정부의 기조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기업은 정부를 따르는 시늉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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