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휴대폰과 TV·모니터·광고스크린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쓰이는 디스플레이는 19세기 말 개발된 진공관(CRT)에서 출발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액정표시장치(LCD)·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이 개발됐고 현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OLED에 기반을 둔 구부러지고 접히고 돌돌 말 수 있는 플렉서블, 투명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를 예로 들었지만, 모든 산업과 제품에는 특별한 기능과 속성을 갖는 소재·부품·장비가 숨어 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기술 속의 기술’로 불리는 이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제품의 부가가치와 신제품 개발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우려 섞인 전망도 있었지만 4개월여간 국민과 기업·정부가 합심해 대응한 결과 핵심품목을 중심으로 수입국 다변화, 국내 생산 확대 등을 통해 기본적인 공급에 큰 어려움 없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 간 협력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수요기업이 글로벌 분업구조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특정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비즈니스 전략을 보완하고, 국내 기업을 발굴해 새 공급망을 구축하는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올해 추경으로 진행되고 있는 25개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은 수요기업이 과제 기획부터 함께 참여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중소·중견기업이 개발한 소재·부품·장비의 성능 평가를 위해 대기업이 양산라인을 대폭 개방하고 1,000억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상생펀드도 출범했다.
일례로 해외 의존도가 90% 이상인 반도체 고온처리용 부품의 경우 부품회사와 장비회사가 공동 기획해 기술개발에 나섰으며, 수요기업은 개발된 부품을 생산라인에서 성능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2021년이면 실제 생산라인에 투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차 분야도 대기업이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중소·중견 전기버스 제작사에 공급하고 종합 반도체 기업과 완성차 업체, 반도체 설계기업이 개발 방향을 공유하는 등 개방형 협력 생태계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생태계 형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마련하고 2022년까지 총 5조원의 기술개발 자금을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또 내년 사상 최대인 2조1,000억원의 소재·부품·장비 예산을 편성했다. 아울러 소재·부품·장비특별법도 마련해 긴밀한 협력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기틀 역시 완비할 것이다.
미래 글로벌 시장에 정해진 승자는 없다. 하지만 ‘기술 속의 기술’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 요인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기업과 정부·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글로벌 수준의 소재·부품·장비 기술력을 갖춰나가고 튼튼한 산업 생태계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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