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한국인 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몽골 국적 승무원에게 “몽골에 돌아가면 가만 안 둔다”는 협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재소장은 6일 새벽 한국으로 돌아와 추가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5일 인천지방경찰청·인천국제공항경찰단 관계자 등에 따르면 강제추행과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오드바야르 도르지(52) 몽골 헌재소장의 혐의에는 지난달 31일 사건 현장에서 몽골 국적 여성 승무원을 협박한 부분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도르지 소장은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회의 참석차 몽골에서 한국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가던 중 인천행 대한항공 기내에서 한국인 승무원의 신체를 만지는 추행을 저질렀다. 도르지 소장은 사건 발생 직후 몽골어 통역을 위해 나선 승무원 A씨를 “몽골에 돌아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몽골어로 협박했고 A씨는 공포에 질려 한때 통역을 거부하기도 했다. A씨는 “도르지 소장은 몽골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며 극도의 두려움을 호소했다고 전해졌다.
도르지 소장은 인천공항경찰단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주한몽골대사관에서 면책특권 적용 대상임을 강하게 주장해 석방됐다. 헌재소장은 비엔나협약과 국제관습법에서 정한 외교관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이미 출국한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도르지 소장이 ‘내가 헌재소장이고 국제회의에 참석해야 하는데 출국을 막으면 외교적으로 불법체포를 문제 삼겠다’고 주장해 특권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내린 판단”이라며 “사안의 경중, 외교적 마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석방 결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 보고서에는 “도르지 소장이 면책특권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면책 대상인지 확인 노력을 했다는 주장과 달리 당시 출동했던 현장 경찰 4명은 외교부 당직자나 경찰청 본청 외사 분야 당직자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도르지 소장을 인계받았다고 밝힌 시점은 지난 1일 오후9시40분께로, 출국이 약 1시간 남아 일정이 촉박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면책특권 확인을 위한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몽골 대사관에서 신원보증을 했기 때문에 일단 석방하고 이후에 다시 조사받도록 하는 것이 통상적인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도르지 소장이 이미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고 항공 일정을 변경해 제3국을 통해 귀국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현재 경찰청은 도르지 소장 체포 및 석방 과정에서 초동조치가 미흡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감찰에 앞서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간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혐의 외에 다른 혐의가 추가될 경우를 비롯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참고인 조사 등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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