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두통학회가 11개 상급종합·종합병원(강북삼성·고대구로·동탄성심·분당제생·삼성서울·서울백·세브란스·을지대을지·의정부성모·일산백병원과 서울의료원) 신경과를 찾은 편두통 환자 207명의 삶의 질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대면 설문조사한 결과다.
편두통은 연간 50만명 이상이 진료 받는 꽤 흔한 질환이며 환자 10명 중 7명이 여성이다. 뇌 주변 혈관 및 신경의 기능 이상으로 심장이 뛰듯 욱신거리는 박동성 두통이 주로 머리의 한쪽에서 일어난다. 4시간 이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두통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절반가량의 환자에서 어지럼증·멀미 증상이 동반돼 구역·구토를 유발하고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일부 환자는 빛·소리에 편두통이 심해진다.
지난해 건강보험 편두통 진료인원은 54만5,600여명으로 2014년보다 9.7% 증가했다. 지난해 진료인원 중 여자가 71%(약 39만명)로 남자의 2.5배나 된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11만여명(20%)으로 가장 많았고 40대 이하가 55%(30만여명)를 차지했다.
◇심할 땐 통증 평균 8.8점…출산의 고통(7점) 웃돌아
편두통으로 인한 통증 정도(NRS Score)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환자의 70% 이상이 평소에도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는 5점 이상의 통증이 있다고 했고, 편두통이 심할 때는 출산의 고통(7점)을 웃도는 평균 8.8점의 통증을 느낀다고 답했다.
환자들은 한달 평균 12일 이상 관련 증상으로 고통받고, 4일 이상 학습·작업 능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며, 하루는 결석·결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두통으로 인한 활동 제약은 학업·경제활동이 활발한 10~40대 환자에서 두드러졌다. 편두통으로 인한 장애정도평가(MIDAS)에서 10~40대 환자 10명 중 7명은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겪는 4등급에 해당했다. 편두통으로 인한 통증과 삶의 질 저하가 생산성 저하,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편두통은 심리적 문제도 일으켰다. 환자 10명 중 6명 이상은 우울증을 경험했다(68%), 우울감을 느낀다(62%), 신경질적이 되거나 화를 자주 낸다(66%)고 답했다. 불면증(26%), 불안 증상(25%), 공황장애(6%)를 경험한 환자도 적지 않았다. 편두통 때문에 가족들을 돌보는 게 어렵다(60%), 가족도 영향을 받는다(60%)는 응답도 많았다.
조수진 대한두통학회장(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경과)은 “활동이 왕성한 청장년층 환자 비율이 높아 사회경제적 부담이 크지만 3명 중 1명만 편두통으로 진료 받은 경험이 있을 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질환이 악화돼 환자의 삶의 질 저하와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편두통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환자들에게 적절한 진단·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진영 학회 부회장(서울의료원 신경과)은 “편두통 환자는 발작 시 극심한 고통으로 학업·사회생활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몰라 일상생활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있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죄책감, 주변의 시선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환자도 적지 않다”며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증상 경험 이후 병원행 13% 그쳐…진통제로 버티다 병 키워
이처럼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지만 편두통 환자들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까지는 평균 10.1년이 걸렸다. 40%는 11년 이상이 걸렸고 14%는 21년 이상 걸렸다. 편두통 증상을 처음 경험하고 병원을 바로 방문한 환자는 13%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일시적 증상 완화를 위한 진통제 복용, 휴식 등 소극적 치료·관리로 두통을 악화시켰다.
편두통은 오랜 기간 심한 통증이 반복되므로 통증 발생 이후 급성기 치료 못지않게 두통 발생횟수를 줄이고 통증 강도를 낮추기 위한 예방치료도 중요하다. 두통학회는 편두통 환자의 3분의1가량이 예방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예방치료를 강력 권고하는 환자는 생활습관 개선과 급성기 치료를 적절하게 시행했는데도 △편두통이 효과적으로 치료되지 않거나 질환으로 장애를 경험하는 경우 △급성기 치료가 효과적이지만 두통 빈도가 잦거나 급성기 치료제를 월 10~15일 이상 사용해 ‘약물과용 두통’ 우려가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환자의 20%만이 병·의원에서 예방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조사에 참여한 11개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에서 예방치료를 받은 환자 10명 중 6명 이상은 두통 일수 감소(66%), 진통제 복용횟수 감소(68%), 삶의 질 개선(63%) 효과를 봤다고 응답했다. 다만 예방치료 환자 10명 중 3명은 약제 부작용을, 그중 41%는 예방약제 중단을 경험했다.
예방치료 효과는 2개월 이상 지속 이후에 판단하며, 효과적인 경우 3개월 이상 지속 이후 용량감량·복용중단을 시도할 수 있다. 유지기간은 두통 빈도·강도, 일상생활 지장 정도 등 환자의 개별 상태에 따라 판단한다.
학회는 두통의 양상과 치료제 복용 등을 기록해 치료 효과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환자 두통일기’ 작성을 권한다. 예방치료의 효능·부작용·순응도 평가와 유지기간 결정에 큰 도움이 돼서다. 학회는 환자와 의료진의 편의를 위해 ‘두통일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주민경 부회장(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은 “예방치료는 편두통의 빈도와 강도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아직 환자들의 인식이 부족하고 치료를 권유하는 병원이 3차 병원에 집중돼 있으며 중도 포기자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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