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 들어 재판 당사자와 재판부가 요청한 제척·회피·기피 신청 건수가 지난달 말 기준 734건을 기록했다. 월평균 73.4건으로 이대로라면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제척·회피·기피 신청은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면서 기피 신청을 제기하는 재판 당사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제척·회피·기피 전체 신청 건수만 공개할 뿐 사안별 건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재판 당사자의 기피 신청을 인용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법원 내부에 팽배하다 보니 사실상 기피를 회피로 돌린 뒤 재판부를 재배당하는 꼼수로 대응한다는 지적이다.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민·형사 재판에서 재판부 변경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8,353건에 달했지만 법원이 이를 인용한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재판부 변경 요청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에는 단 한 건도 없다. 재판부의 꼼수에 국민의 사법 참여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기피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피 신청에 대한 인용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사법부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법부가 재판의 공정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신뢰를 얻으려면 사안별 통계와 자료를 소상히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척·기피·회피는 재판부 변경을 요청하는 법적 절차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제척과 회피는 판사 스스로 공정한 재판을 약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재판부 변경을 요청하는 제도다. 제척은 재판부 변경을 기본적으로 강제하는 것으로 해당 판사가 피해자 및 피고인과 친인척 관계거나 과거 해당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경우 사유가 성립된다. 회피는 제척 사유에 해당하지 않지만 해당 판사가 판단했을 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경우 재판부 변경을 요청하는 제도다. 예컨대 재판 당사자가 판사의 학교 동창이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경우에 회피를 신청할 수 있다. 회피는 제척과 달리 구체적 기준이 없어 판사 개인의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
기피는 재판 당사자가 배정받은 판사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어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기피를 신청하면 재판 당사자는 3일 이내에 서면으로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 해당 판사가 과거 비슷한 사건에 대해 과도하거나 우호적인 판결을 내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고 신청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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