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확대재정을 밀어붙이는 와중에 불용예산이 급증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지난달 말 현재 재정집행률은 지방이 70%에 머물러 있고 중앙정부는 85%에 그치고 있다. 지자체 금고에 50조원이나 묶여 있는 것을 포함해 무려 70조원이 불용액으로 넘어갈 처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급하다고 주장했던 여당이 불용예산 10%만 투입해도 추경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게다가 세수는 줄어드는데 수십조원의 예산 불용액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면밀한 계획도 없이 예산부터 따내고 보자며 사업을 부풀리고 불요불급한 투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무리한 재정 확대보다 지출 구조조정이 더 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촉박한 예산 집행이 내수를 살리기는커녕 선심성 돈 풀기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현 정부의 재정 지출은 복지 지출 성격이 강해 구조적으로 민간소비와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벌써 지방에서는 멀쩡한 도로를 파헤치고 보도블록 공사를 벌인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지역마다 불필요한 개발사업이나 전시성 행사가 쏟아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
방만한 예산구조를 방치하면 초슈퍼 예산이 마련된 내년에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재정 규모도 규모지만 생산성을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할 일은 ‘예산 털어내기’가 아니라 효율적인 재정설계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을 명심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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