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삶에서 음악은 중요한 존재입니다. 길거리를 보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요. 그럼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누가 우리의 음악감상을 책임졌을까요.
바로 MP3플레이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MP3 플레이어들은 모두 아이리버의 제품들입니다. 2000년대 초 아이리버는 MP3 산업을 선도하며 업계 1위를 달렸습니다. 후발주자 애플을 견제하며 사과를 씹어버리는 광고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아이리버는 애플에 처참히 밀려나게 됩니다. 아이리버는 왜 애플을 ‘씹어’버리지 못했을까요.
레인콤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리버의 독특한 디자인입니다. 당시 양덕준 레인콤 대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력은 물론 디자인이 남달라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강조했습니다. 양덕준 대표는 디자인 하나를 위해 미국까지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포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를 찾아가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MP3플레이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두 전문가가 힘을 합쳐 탄생한 첫 제품이 바로 이 ‘iFP100’ 시리즈입니다. 2002년 출시된 이 제품은 작은 크기와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두 번째는 바로 유통망의 혁신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자제품의 주요 유통 경로는 용산 전자상가 등 대형 도매상이었습니다. 대부분 전자제품이 이 ‘큰손’들을 통해 시장에 유통됐죠. 그러나 레인콤은 기존 유통 채널을 고집하지 않고 온라인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MP3 플레이어 시장은 다른 가전제품과는 달리 주 수요층이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로 한정돼 있었기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팔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레인콤은 인터넷·TV홈쇼핑 등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1020에 다가갔습니다. 또 인터넷으로 실시간 불만 처리를 접수하고, 기존 제품의 성능을 보강하는 펌웨어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레인콤은 승승장구했습니다. 2001년 미국시장 진출 6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2003년에는 매출액 2,000억 원을 돌파했죠. 2001년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으며 MP3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 때 애플은 자신들의 라이벌로 아이리버를 지목했습니다. 아이리버 역시 2004년 사과를 씹어먹는 광고를 선보이며 애플에 맞대응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극찬하고 최대 경쟁 상대가 애플이었을 정도였던 아이리버. 얼마나 대단했는지 감이 오시나요.
그러나 포부와는 달리 애플이 등장한 후 아이리버는 점점 하락세를 걷게 됐습니다. 아이리버가 애플을 씹어버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플랫폼의 변화에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할 당시 디지털 음원 시장은 소니가, 하드웨어인 뮤직플레이어 시장은 레인콤이 선두주자였습니다. 애플은 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두 시장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디지털 음원을 사고파는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을 개설한 거죠.
당시 세계 음반업계는 불법 복제 파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애플은 음반사들과 저작권 계약을 맺고 음악파일을 한 곡당 99센트씩 받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99센트라는 가격에 큰 부담 없이 아이튠즈를 이용한 음악 거래를 시작했고, 음원 시장에서의 애플의 입지는 점점 높아졌습니다.이와 동시에 애플은 혁신적인 뮤직 플레이어 ‘아이팟’을 출시하며 하드웨어 시장 공략까지 나섰습니다. 아이튠즈를 통한 음악 콘텐츠 유통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아이팟의 인터페이스에도 쉽게 적응했습니다. 똑같은 기능을 가진 MP3플레이어지만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이 더해지며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한 혁신에 성공한 거죠.
경쟁에서 밀린 아이리버는 점점 설 곳을 잃게 됐습니다. 불과 2년 뒤인 2006년 매출은 4,000억원대에서 1,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435억원까지 치솟았던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2007년에는 더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 애플이 아이팟을 기반으로 휴대전화를 결합한 ‘스마트폰’을 출시한 것입니다. 2007년 1월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 디 오리지널’은 휴대폰으로 음악 감상은 물론 카메라, PDA, 내비게이션, TV에 랩톱의 기능마저도 들어있는 혁신적인 기기였습니다. 이 아이폰의 탄생은 한마디로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렸습니다. 워크맨에서 아이리버의 시대로 옮겨갔듯 사람들은 이제 별도의 기기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음악까지 듣기 시작한 거죠. 아이리버는 활로를 찾기 위해 2009년 상호명을 레인콤에서 아이리버로 바꾸기도 하고 아이튠즈와 같은 음악 스토어 ‘아이리버 뮤직’을 론칭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가 사랑했던 아이리버 모델들은 하나 둘 단종되기 시작했습니다. MP3 플레이어의 익숙했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이리버는 2014년 SK에 인수됐고, 2019년 3월 ‘드림어스컴퍼니’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드림어스컴퍼니는 기존 디바이스 사업에서 본격적으로 콘텐츠 플랫폼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FLO’를 운영하고 있죠. 아이리버가 애플의 플랫폼으로 겪은 위기가 새 플랫폼 사업의 전화위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학창시절 우리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줬던 뮤직 플레이어. 아이리버의 변신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공지유 인턴기자 nouga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