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지금의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에서는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물막이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한강 본류와 지류(샛강)로 갈라진 두 개의 물줄기 중 하나를 막아, 한 줄기로 모으는 작업이었습니다. 두 갈래의 물줄기 가운데 살아남아 지금까지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쪽은 어느 물줄기일까요? 그리고 그 물줄기는 서울의 지형을, 부동산 시장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꿨을까요.
◇한강의 작은 섬이 금싸라기 땅으로…‘잠실의 탄생’
위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밝히자면, 살아남은 쪽은 샛강이었습니다. 중종 15년(1520년), 대홍수가 나면서 만들어진 이 샛강은 물길이 직선으로 난 탓에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렸습니다. 반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한강 본류는 강 가운데 위치한 섬(하중도·河中島)이었던 잠실도와 부리도(현 신천 일대)를 휘감고 돌았던 탓에 물길이 구불구불했습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홍수 관리에 편리한 직선형 물길인 샛강을 선택하고 한강 본류를 메워 택지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잠실입니다. 만일 당시 정부가 샛강이 아닌 한강 본류를 살렸다면,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에 속하는 잠실은 강남이 아닌 강북이 될 뻔한 것입니다.
이호선 한강역사해설사는 “땅을 메워 사라진 한강본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석촌호수”라며 “올림픽대로 북단과 몽촌토성 앞, 석촌호수를 거쳐 탄천으로 이어지던 것이 원래 한강의 물길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해설사는 “잠실과 아시아공원 일대가 섬이었다는 기록도 가까운 도심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아시아공원에 가면 과거 부리도 주민들이 세운 샛강 마을 기념비라는 것이 세워져 있다. 석촌호수 동호와 서호를 잇는 다리에는 잠실도의 과거 사진 등이 붙어있다”고 전했습니다.
◇ 강남·서초·송파·강동…강남 4구는 언제 시작됐나
이리하여 잠실은 한강 이남, 강남(江南) 위치하게 됐습니다. 물론 서울에서 강남은 한강의 남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죠. 우리나라에서 강남은 고가 부동산 밀집 지역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강남구가 강남인 것은 그렇다 치고, 서초와 송파 강동은 어째서 각자의 이름을 두고 강남 4구라고 묶여 불리는 것일까요. 단지 집값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일까요.
이들 지역을 강남 4구라 칭하는 이유는 알고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이들 모두가 원래 하나의 구, 바로 강남구였기 때문입니다. 강남은 원래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경기도 시흥군과 광주군에 속하던 지역이었지만, 1963년 서울로 편입돼 처음엔 성동구에 속했습니다. 1970년대 대규모 주택 개발이 이뤄지면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1975년 비로소 강남구로 독립하게 됩니다. 강남구는 팽창에 팽창을 거듭했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갈라져 나온 곳이 1979년 분구한 강동구입니다. 1988년에는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빠져나왔고, 같은 해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리돼 지금의 강남 4구를 이루게 됐습니다.
강남이 서울이 아니던 시절의 기억은 우리 도시에 여전히 각인돼있습니다. 영동대로, 영동지역이라는 표현입니다. 강남이 서울 영등포구의 동쪽에 있었다고 해서 개발 초기 강남을 ‘영동지역’이라 부르고 이 일대 택지 개발을 ‘영동 개발’이라 명명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성동구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한강다리는 영동대교, 다리에서 강남을 관통하는 길에는 영동대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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