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듯싶다. 우선 총량적으로 재정 건전성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은 듯하다. 부문별로도 성장동력 확충은 생색만 낼 뿐 온통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노골적인 현금살포가 망라돼 있다시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내용으로 된 513조5,000억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내년도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재정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예산안대로 해도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넘지 않는다”며 “건전성 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내년도 총지출증가율은 9.3%로 2년 연속 9% 이상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목성장률의 거의 3배 정도 높은 증가율로 조세부담률을 크게 높이지 않는 한 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미 내년 예산안에 60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적자 국채 발행계획이 포함돼 있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도 3.9%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의 3.8%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 권고치인 3%를 넘어서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1년부터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이 4%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9.8%로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평가되는 40% 선에 육박한다.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21년에는 42.1%, 2023년에는 46.4%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 규모도 내년 800조원을 넘어 2023년에는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의 노인부양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처럼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미래세대가 부담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이 40% 안팎인데 OECD 평균은 110%라서 한국의 재정이 건전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도 문제다. 한국의 국가채무지표와 국제적인 국가부채지표는 포괄범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고채권·국민주택채권·외평채·지방정부순채무 등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급의무를 지는 채무만 포함한다. 반면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가채무에 공무원·군인연금 장기충당금, 국가보증채무, 국가기능을 수행하는 준공공기관 부채, 중앙은행 통화안정증권 부채를 포함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재정 매뉴얼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준 그대로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를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도 내년 110% 수준에 도달해 위험수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예산정책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중기재정위험을 경고하는 이유다.
부문별로는 현금성 복지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41조원의 현금성 복지와 21조원의 단기 알바, 노년 단기일자리 중심의 일자리 예산까지 합하면 1,200만명 넘는 국민이 62조원 이상의 현금성 복지를 받고 있다. 일하는 국민의 비중은 줄고 공적 이전에 의존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 등 일자리 예산 확대,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구직급여 보장성 강화, 고교 무상교육 확대, 장병급여 인상 등 현금성 복지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자립 제고를 위한 투자 확대, 벤처 붐 확산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생활형 사회간접자본과 한반도 평화경제구현 투자도 증가했다. 대부분 중장기 성장동력 확충과는 거리가 먼 투자들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책 실패로 초래된 경제 참사를 무리한 재정 풀기로 메워보려고 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미래세대의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예산은 반드시 국회 심의과정에서 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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