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경매시장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상반기 낙찰총액은 전년 대비 204억원 감소한 826억원에 그쳤다. 여기다 최근 정부가 작고 작가의 6,000만원 이상 작품에 부과하던 미술품 양도세를 ’기타소득’에서 ‘사업소득’으로 돌려 과세강화를 검토하는 것이 알려져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돌파구 찾기에 사활을 건 경매회사가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울옥션은 시작가 0원의 파격적인 방식의 온라인 경매 ‘제로 베이스(Zero Base)’를 새롭게 선보였다. 말 그래도 시작가 0원, 추정가조차 없는 새로운 경매방식이다.
최근 들어 미술시장의 소비 경향이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출품작도 미술사적으로 아주 진귀하거나 완전히 새롭거나 양 갈래로 나뉘는 추세다. 이에 서울옥션은 초저가 전략을 넘어 ‘제로 베이스’에서 작품 자체로 겨뤄보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국내 전업미술가 수는 1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 중 경매에서 거래되는 작가는 0.1%에 불과하기에 미술경매의 문턱을 낮추고자 기획됐다. 지난 2006~2007년에 절정이던 미술시장의 호황 이후 젊은 작가들의 작품값이 ‘다소 비싸다’고 느끼는 수요자들의 불만도 고려했다. 미술품이 사치품이나 재테크 수단이라는 인식을 깨고 취미와 애호로 ‘부담없이’ 그림을 걸 수 있는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한 의지도 담겼다.
출품작은 경매가 순차마감되는 오는 15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 5층 전시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스타킹처럼 탄력있는 다양한 천을 소재로 조형성을 추구하는 정다운의 작품은 추상화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천들이 포개지며 이루는 공간감도 독특하다. 도시의 이미지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는 이언정은 판화전공자답게 깔끔한 완결성이 돋보인다. 건물과 낯선 골목을 소재로 삼은 장은우의 작품은 낡음과 익숙함이 또 다른 도시미학을 이야기한다.
어릴 적 유괴당한 경험이 쓸쓸한 아이의 얼굴, 아이를 돌보는 사람으로 확장된 함미나의 그림은 상처 난 무의식을 건드린다. 명품 포장지와 비닐을 액자에 집어넣은 김상현의 작품들은 재기발랄하고, 김완진의 흩어진 누드화는 살 그 자체의 색과 온기에 주목하게 한다.
서울옥션 측은 “좀 더 많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장 구조를 만들고자, 다양한 전시이력과 작품성 등을 고려해 참신한 새 인물들을 발굴했다”면서 “기존 경매기록이 없기에 시작가는 모두 0원이며 경합 여부에 따라 작품가는 치솟을 수도 있으니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다”고 소개했다. 미술경매가 2차 시장인 만큼 출품 작가들은 1번 이상의 개인전을 통해 시장의 1차 검증을 거쳤다. 이번 출품작가 6인은 30~40대 초반이지만 나이 제한도 두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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