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던 1643년, 프랑스 리옹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던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올라갔다.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빌기 위해서다. 무탈하다면 언덕 꼭대기에 마리아 조각상을 만들어 기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고통 받은 사람이 거의 없이 흑사병이 지나갔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852년 마리아상이 드디어 완성돼 제막식이 치러진 12월8일 리옹 시민들은 촛불을 켜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했다. 1999년부터 매년 12월8일을 즈음해 나흘간 이어지는 ‘리옹 빛 축제’의 기원이다.
애초부터 리옹은 도시 이름 자체가 빛과 관련돼 있다. 기원전 43년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에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로 세워졌는데 이 지역을 당시 갈리아인(켈트인)들은 ‘Lugdunon’ 즉 태양신을 의미하는 Lug(빛)와 dunon(언덕)을 합친 말로 부르고 있었다. 이를 라틴어화한 ‘루그두눔(Lugdunum)’이 도시 이름이 된 후 지금(Lyon)에 이르고 있다.
오랫동안 고대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리옹이 프랑스 영토가 된 것은 1312년 프랑스왕국에 합병되면서다. 이후 왕궁의 지원 아래 레이온과 견직물 등 직물산업 중심지로 거듭났다. 15세기 이래 세계적인 견직업 도시로 명성을 얻었으며 17~18세기에는 동·서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입되는 생사(生絲)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될 정도였다. 지금은 화학·금속 등 다양한 산업이 번창해 파리·마르세유에 이은 프랑스 3대 도시로 성장했다.
현대 공업도시라는 이미지 못지않게 리옹 시내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수백년 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12세기에 지워진 고딕양식의 생장 대교구 교회, 푸르비에르 언덕의 로마 시대 원형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생텍쥐페리와 상업영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1923년 설립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본부도 있다.
11일(현지시간) 리옹 인근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해 몇 명이 다쳤다는 소식이다. 지진안전국가로 평가되던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강진이어서 당국이 원인 규명과 함께 원전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도 벌였다고 한다. 여진이 예상된다니 더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지진에 안전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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