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새끼손가락 일부가 잘릴 정도의 상해를 입히더라도 형법이 규정한 ‘불구’ 상태에 해당하지는 않아 중상해가 아닌 ‘상해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결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이균용 부장판사)는 중상해 혐의로 기소된 A(55) 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중상해 혐의를 인정해 A 씨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A 씨는 올해 2월 서울의 한 공터에서 술을 마시던 일행과 시비가 붙자 피해자의 손가락을 깨물어 잘리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4차례 접합 수술 등을 받았으나 새끼손가락 마지막 뼈마디의 20%가 절단되는 장애를 얻었다. A 씨에게 적용됐던 중상해죄는 생명의 위험을 발생하게 했거나 불구 또는 불치·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에 적용된다. 일반 상해죄가 7년 이하의 징역형인 반면 중상해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해 더 무겁다.
이후 1심은 검찰이 적용한 중상해 혐의를 인정했으며 A 씨는 항소하지 않아 해당 재판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검찰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항소하면서 2심이 진행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직권으로 원심의 법리 해석이 맞는지를 따지면서 심리 방향이 바뀌었다. 피해자의 상태를 ‘불구’로 규정할 수 있느냐가 주요 쟁점이 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중상해가 아닌 상해 혐의만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A 씨를 석방했다. 재판부는 “형법에 정해진 ‘불구’란 단순히 신체 일정 부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사지 절단 등 중요 부분이 상실됐거나 시각·청각·언어·생식기능 등 중요한 신체 기능이 영구적으로 상실되는 등 중대한 불구만을 말한다고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이것이 죄형법정주의의 요청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새끼손가락의 마지막 마디 부분 20% 정도를 상실한 것만으로는 중요 부분을 상실했거나 중요한 신체 기능을 영구적으로 상실했다고 보기 어려워 형법상 정해진 불구에 해당한다고 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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