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산마르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포교를 하다 순교했고 그의 유해는 그곳 성당에 묻혔다. 세월이 흘러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 이슬람 세력은 그곳에 이슬람 성전을 지었고 그 과정에 건축자재가 모자라자 기독교 성당의 자재를 뽑아 충당하도록 했다. 그 성당은 산마르코의 유해를 보관했고 이를 안 몇몇 베네치아 상인은 산마르코의 유해가 이교도에게 훼손될 것을 두려워해 베네치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이슬람 관리들에게 유해를 옮기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슬람 금기 식품인 돼지고기를 유해 위에 쌓아 돼지고기인 것처럼 위장해 배로 옮겨왔다. 베네치아는 산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한 뒤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성당을 짓고 산마르코 대성당으로 명명했다. 대성당은 9세기 완성됐으나 이후 폭동으로 소실된 뒤 11세기 재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독교 세력은 13세기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함락한 뒤 온갖 금은보화를 약탈해 대성당을 장식했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네 마리 청동 말상(쿼드리가)도 이때 훔쳐왔다. 쿼드리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멸망시킨 뒤 프랑스로 가져 갔지만 그가 죽자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지금 대성당 전면에 위용을 뽐내고 있는 쿼드리가는 사실 복제품이고 진품은 손상될 것을 우려해 대성당 내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609년 산마르코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높이 98m짜리 종탑에서는 이탈리아 과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원로들을 모아놓고 그가 만든 망원경을 보여줬다. 원로들은 망원경으로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바라보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배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원로들에게 선물했고 그는 대신 자신의 교수 연봉을 두 배로 올려 받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에 큰비가 쏟아져 산마르코 대성당을 포함한 이 일대가 물에 잠겼다. 바다를 낀 베네치아는 조수 수위가 120㎝를 넘어가면 도시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번 비로 조수 수위가 187㎝까지 올라갔다. 이번 비로 대성당 내부는 물론이요, 산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실도 침수 피해를 받았다. 산마르코가 1,200년 전 자신을 수호성인으로 받든 베네치아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이번 자연재해를 잘 헤쳐나갈 힘을 주기를 기대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