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세계 경제 주도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대량생산 방식을 의미하는 포디즘(Fordism)과 경영의 과학화를 상징하는 테일러리즘(Taylorism)을 기반으로 ‘경제적 가치가 최우선인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정보기술(IT)혁명이 일어나고 고객 중심, 인재양성 중심의 ‘휴렛팩커드 기업문화(HP Way)’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기업활동의 사회적 가치가 부각되는 새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금융 부문으로 확산해 투자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또 국가경영전략 측면에서도 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경제기구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고려하는 포용성장을 새로운 개발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엔 역시 17개 분야 169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회원국 모두가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사회적 가치가 최우선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추세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정부가 할 일은 포용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모델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가치는 사회혁신을 통해 구현돼야 한다. 지난 2·3세기 동안 세계적 기업이나 국가의 경제적 가치는 기술혁신을 통해 극대화됐음을 알 수 있다. 1차 산업혁명 시대의 스팀 엔진,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기, 그리고 3차 산업혁명 시대의 PC와 인터넷 기술이 그 대표적 사례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가치 역시 사회혁신을 통해 극대화됐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일례로 1880년대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는 획기적 사회혁신 방안이었다. 사회혁신 전통은 최근 사회적기업, 사회금융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은 현대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두 개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혁신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생성하려는 안이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선심성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득표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사회적 가치창출 과정의 효율성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우리 기업은 경쟁이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 반면, 사회적 가치는 국내시장에서 정치권에 의해 인기영합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정에도 시장원리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사회금융시장을 통해 사회혁신에 필요한 자금이 사회적 가치를 가장 잘 창출해내는 사회 혁신가에게 공급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정부는 ‘제3의 길’ 정책의 일환으로 2000년 ‘사회금융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해 10년간 운영함으로써 영국이 사회혁신의 메카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시 혁신 기업가에게 사업자금과 경영 노하우를 함께 제공하는 벤처캐피털 전통을 이어받은 사회 벤처캐피털 시장의 신장을 통해 사회혁신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무원이 인위적으로 만든 지침에 따라 선정된 사회적기업에 다양한 지원을 해 사회적 기업가가 진정한 사회 혁신가가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혁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책의 틀을 지금의 직접적 지원에서 시장원리와 사회금융시장을 통한 간접적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 이에 더해, 기업 역시 경제적 가치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유가치창출(CSV)’ 추세에 동참함으로써 ‘포용국가’ 건설의 주역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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