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대표 정치인으로 꼽히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영남권 3선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의 동시 용퇴 선언이 여야 ‘물갈이’ 지형 변화에는 ‘미풍’에 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내 같은 세대나 지도부를 겨냥, 불출마 등 이른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내세웠으나 거부 의사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경우 오히려 김 의원에 대해 “그동안 본인은 뭘 했나”라는 반발까지 나오는 모양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쇄신은 국민적 요구이자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며 “이를 통해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진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만일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저부터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 총사퇴’ 등 전날 김 의원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당 내부에서 분출하는 쇄신 요구에 내년 총선까지 당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한국당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책무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에 올라간 공수처 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을 막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요구한 ‘지도부 불출마·재창당’보다는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을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임 전 실장이 정치계 은퇴 카드를 꺼냈으나 당내 같은 세대로 분류되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우상호·최재성 의원은 “인위적 물갈이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미래 세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출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문제들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사람이 다 나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86세대 퇴진론을 반박했다. 이 원내대표는 임 전 실장과 같은 전국대학생협의회 의장 출신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86 용퇴론’에 불쾌감을 직접 드러냈다. 우 의원은 “조국 장관 사태 이후 우리 세대에 대해 질타가 쏟아지지 않았나.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기득권화돼 있다고 말하는 데 대해 약간의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전대협 출신의 최 의원 역시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 “민주당은 인위적인 공천 물갈이가 필요 없는 정당”이라며 “공천 룰은 86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못 박았다.
다만 두 정치인의 세대교체론을 두고 양당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민주당에서는 86세대 정치인 용퇴와 중진 역할론이 대두하고 있다. 이철희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2000년대부터 정치를 시작한 그 그룹들이 20년이 됐으면 퇴장할 때가 된 것”이라며 “시대의 흐름 자체가 젊고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오랜 정치 경력을 바탕으로 중진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물론 정치적 비전이 없는 사람들은 나가야 하지만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은 제 몫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86세대 정치인들이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치를 하며 닦은 정무적 감각과 국정 운영 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당 내에서는 김 의원이 용퇴 때 한 발언을 두고 거센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 요구가 당을 흔들기만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존재 자체가 민폐’ ‘좀비’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한 재선의원은 “3선급 예우를 받고 여의도연구원장까지 하신 분이 지금까지는 도대체 뭘 하고 이런 감정적 발언을 하나”라고 비판했다. 또 “김 의원보다 열심히 의정활동하고 노력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 없어져야 할 사람으로 도매급 매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인엽·구경우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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