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가 지난 2016년 이후 3년 만에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것은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평가가 많다. 파업의 빌미가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이 지난해 6월 철도노조와 맺은 ‘교대근무체계 개편 노사합의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당시 코레일 노사는 현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로 개편하는 방안에 합의했는데, 현재 철도조노 측에서 이 합의를 근거로 4,600명 이상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코드 인사가 문제의 발단
문제는 코레일은 이 같은 대규모 인력 충원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상위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당시 오 전 사장은 노조와의 합의에 대해 국토부와 사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오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취임 당시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은 데 따른 ‘논공행상’ 차원에서 코레일 사장이 됐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철도 비전문가’가 경영을 맡아 한 ‘공수표’에 결국 전국 철도교통 대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오 전 사장은 지난해 말 강릉선 KTX 사고 등 3주간 11건이나 발생한 열차 사고 책임을 지고 결국 사퇴했다.
②노조 무리한 요구... 정부도 “근거 없다”
철도노조 역시 코레일의 경영 상황에 비춰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철도노조가 이번 파업에 앞서 내세운 요
구 조건은 핵심 쟁점인 4조2교대제 도입을 위한 인력 4,600명 충원을 비롯해 △ 총인건비 정상화(임금 4% 인상) △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와 자회사 임금 수준 개선 △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SR과 연내 통합 등이다.
그러나 4,600명이 필요하다는 근거는 현재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도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 마련된 철도파업 대비 비상수송대책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무작정 산정 근거나 재원 대책 없이 증원하면 국민 부담이 있다”며 “증원이 필요한 구체적인 내역, 산정 근거, 재원 대책이 함께 있어야 검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는 4,600명 충원을 요구하고, 코레일 사측은 1,865명이면 충분하다는데 (정부는) 1,865명에 대한 근거조차 하나도 없다”며 “국민에게 부담되는 것이면 현재 검토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현재 재정 상태가 악화한 코레일은 대규모 인력 충원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코레일은 지난해 영업적자 39억원, 당기순손실 1049억원을 냈으며, 총부채는 작년말 기준 15조5,532억원이다. 무작정 고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김 차관은 “(4조2교대 전환 전에) 먼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현재 유휴인력을 이용할 경우 충원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③주 52시간 맞물려 뒤늦은 대책
코레일 노사 합의안인 4조2교대 도입은 정부의 주 52시간 도입과도 관련이 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조가 주장하는 인력 규모가 4,600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600명을 충원한다면 주간 근로 시간이 31시간으로 떨어진다. 김 차관은 “현재 3조2교대 근무자들의 주간 근무시간이 39.3시간인데 (1,865명이 필요하다는) 사측 요구를 수용해도 주 35시간밖에 안돼 전체 근로자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또 철도파업에 투입된 대체인력 역시 주 52 시간제를 적용받는 만큼 파업이 장기화하면 운행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날 오전 11시 현재 전국 철도 운행률은 92.2%로 높은 편이나, 시간이 지나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코레일은 이날 뒤늦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코레일은 최근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피해가 없도록 논술과 수시면접 수험생을 대상으로 수송 편의를 제공하고, △사전 공지 및 안내방송 강화 △열차 지연 시 KTX 등 선행열차로 무료 환승 조치 △경찰 등과 협조해 긴급 수송체계 마련 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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