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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속초 산불은 ‘인재’…한전, 막을 수 있었다”

노후 전선·부실시공·관리…고성·속초산불 복합적 하자 드러나

경찰, 한전 등 관련자 9명 업무상 실화 등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

이재민들 “구속 한 명 없는 게 말이 되느냐” 반발

고성 산불 발생 당시 시민들이 확산하는 불길과 연기를 피해 차량 뒤에서 대피하고 있다./연합뉴스




축구장 면적 1,750개에 해당하는 면적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고성·속초산불의 원인이 ‘고압전선 자체의 노후와 한전의 부실시공, 부실 관리 등 복합적인 하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인재(人災)라는 게 드러남에 따라 관련 직원 9명은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이 중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성·속초산불 원인을 수사한 강원 고성경찰서는 20일 “한전 직원 7명과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시공업체 직원 2명 등 9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업무상 실화, 업무상 과실 치사상, 전기사업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 4월 4일 오후 7시 17분께 시작된 고성·속초 산불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도로변 전신주의 고압전선이 끊어져 ‘전기불꽃’(아크)이 낙하하면서 발생했다. 이에 경찰은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의 설치·점검·보수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한 업무상 실화에 무게를 두고 8개월간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으며 수사 기록만 1만 5,000여 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전선 자체의 노후, 부실시공, 부실 관리 등의 복합적인 하자로 인해 전선이 끊어지면서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전선이 끊어져 산불 원인을 제공한 해당 전신주를 포함해 일대의 전신주 이전·교체 계획을 한전이 2017년 수립하고도 2년여간 방치한 사실도 이번 조사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유지 내에 위치한 전신주를 계획대로 이전·교체했다면 산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전기 배전과 관련한 안전 관리 문제점에 대해서는 유관기관에 통보했다. 또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 개선을 건의할 방침이다.



한전은 경찰 조사에 대해 이전·교체 작업을 2년간 방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만큼 말을 아꼈다. 다만 산불 원인을 제공한 전신주가 언제 설치·시공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한전 속초·강릉지사와 한전 나주 본사, 강원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섯 차례나 벌였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설치 시기를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성·속초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이재민들은 8개월여 만에 내놓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분노를 표했다. 장일기 속초·고성 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중실화도 아닌 업무상 실화라니 한마디로 참담하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재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노장현 고성산불 비상대책원장도 “사람이 죽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인재인데 구속자 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한 뒤 “검경이 한전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며 “이재민들 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4월 4∼6일 고성·속초(1,267㏊), 강릉·동해(1,260㏊), 인제(345㏊)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로 총 2,872㏊의 산림이 모두 탔다. 재산 피해액은 고성·속초 752억원, 강릉·동해 508억원, 인제 30억원 등 총 1,291억원에 달하고 648가구 1,49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면서 해당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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