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몇 번으로 빠르게는 몇 시간 만에 원하는 상품을 받아 볼 수 있는 시대.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제품도 빠르게 만들어져서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 새 물건이 넘쳐나고 시시각각 변하는 최신 유행과 끊임없는 소비를 자극하는 기업들의 마케팅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중고 가게나 빈티지 상점, 벼룩시장은 낯설다 못해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10여 년 전 핀란드 헬싱키로 유학을 떠난 저자에게도 그랬다. 세련된 북유럽 디자인을 공부하려 간 저자의 눈에 핀란드인들의 중고품 사랑은 낯설기만 했다. 핀란드인에게 ’왜 중고를 쓰냐?‘고 물어도 중고를 쓰는 게 일상인 그들은 특별한 대답을 들려주진 않았다. “돈이 별로 없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중고 가게에 먼저 갔어”라는 대답 정도가 돌아왔고, 중고품을 쓰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질문 자체를 신선하게 받아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핀란드에 정착하면서 찝찝함을 가득 안고 ‘재사용 센터‘, 즉 중고품 가게에서 세간을 장만했던 저자는 어느덧 이것이 핀란드의 문화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신간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는 환경주의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는 요즘 대안적인 소비행위일 수 있는 핀란드인의 중고품 사랑을 통해 소비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전한다.
핀란드는 ‘중고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없이 많고 종류도 다양한 중고 가게로 가득 차 있다. 두세 블록마다 하나씩 ‘끼르뿌또리(Kirpputori)’ 또는 ‘끼르삐스(Kirppis)’라고 불리는 중고가게가 자리잡고 있고, 기부형 중고가게부터 판매대행 중고가게, 빈티지 상점, 골동품 상점, 벼룩시장 등 다양한 중고가게들이 즐비하다. 중고 쇼핑은 핀란드의 소비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의류 전문 중고가게 ‘우프(Uff)’는 젊은 ‘패피’들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인기다.
길거리에서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올라오는 웹사이트 ‘헬룩스’에 소개된 젊은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프’에서 구입한 듯한 옷으로 코디를 한 25살인 야네떼는 “중고옷만 입는데, 요즘은 2000년대 초반 스타일에 푹 빠졌다”고 하고, 18살 일마리는 “힙합 아티스트나 전 세계 다양한 문화에 영감을 받지만 브랜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핀란드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며 애착있는 중고품에서 의미를 찾는지를 보여주는 인터뷰는 소비와 정체성 그리고 자아가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지 확인시켜준다. 1만6,8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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