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탄핵 관련 소식에 파묻혀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다른 해외 정책들을 놓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지도력을 추가로 헌납하고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한 세계질서를 만들 일방주의와 고립주의 병합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금을 400% 이상 인상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요구가 나온 가운데 지난주 양측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회담은 또 결렬됐다. 주한미군 주둔비는 연 20억달러로 이제까지 한국이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액수를 부담해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매년 한국이 지출해야 할 방위비분담금으로 47억달러를 제시했다.
트럼프는 가장 가까운 우방국 중 하나인 한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면서도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는 기괴한 브로맨스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올해 유엔결의안을 위반하며 총 24기의 미사일을 발사했음에도 트럼프는 한미 공동군사훈련을 또 연기했다. 지난주 트럼프는 북한 독재자에게 ‘곧 만나자’는 트윗을 날리며 데이트를 신청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북한의 한 고위관리는 성명서를 통해 북조선은 워싱턴과의 “쓸모없는” 회담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한국과의 마찰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국인 일본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일본에도 상당한 규모의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같은 요구는 핵심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잘못된 수지타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이 철수할 경우 그들 전체를 미국 본토에 재배치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도움 없이 모든 비용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트럼프가 이들을 강제 전역시키고 병력을 축소할 계획이 아니라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 전진배치는 전략적·경제적 측면에서 타당성을 지닌다. 게다가 트럼프는 전체 미군 축소가 아닌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는 충동적으로 현장에서 떠나려 든다. 그는 이미 중동에서 발을 뺐고, 중동의 주도권을 그가 총애하는 독재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양도했다.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미군이 북부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크루드족의 오랜 근거지였던 광활한 해당 지역은 고스란히 터키의 영향권으로 편입됐고, 중동권에서 러시아와 이란 및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입지가 강화됐다. 미국이 주도한 이슬람국가(IS)와의 전투에서 1만명의 사망자를 내며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시리아 북부 크루드족이 미국의 배신행위에 항의하고,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까지 여기에 가세하자, 트럼프는 에르도안에게 크루드족을 실질적인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터키 정부의 자체 제작 비디오를 공개하도록 했다.
이뿐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온 규범과 가치를 포기했다. 현 행정부의 결정에 따라 미국은 유엔인권위원회를 탈퇴했고 국제무대에서 인권 분야의 정책 주도권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로 넘어갔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인권감시단체들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보태 ‘트럼프 관세’는 세계 자유무역 시스템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흔들어놓았다. 이번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가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오랫동안 미국이 고수해온 입장을 번복했다.
이처럼 어수선한 상황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뇌사’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시리아 정책이 나토 회원국들과의 사전조율 없이 결행됐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난민들이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밀려오는 등 중동에서 유럽은 미국에 비해 훨씬 큰 잠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주의를 앞세워 대서양 지역 우방국들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마크롱은 트럼프로 인해 유럽이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한 상태라고 확신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유럽은 지금 “유럽 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않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과 마주하고 있다.” 마크롱은 이슬람 테러에 대항하는 유럽의 방어 노력에 트럼프가 종종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건 그들의 문제이지 우리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더 이상 유럽의 방위체제 보장을 위해 예산을 지출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이제 유럽인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나토가 ‘회원국 중 어느 한 곳에 대한 공격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5조 조약을 유일하게 발동한 것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슬람 테러리즘에 유럽 홀로 맞서고 있다는 유럽인들의 인식은 역설적인 동시에 비극적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75년 전 미국이 구축하고 지금까지 관리해온 ‘룰에 기반한 국제시스템’을 해치는 불량 정권으로 자주 지목됐다. 그들이 때때로 자유를 제한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한 적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일부 불량한 국제적 표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규정과 규범을 거부해온 동맹국들과 우방집단을 조직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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