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고리로 ‘한·아세안 경제공동체’ 건설을 이룩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미중 무역분쟁 등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있으나 아세안 지역에서는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키며 공동 번영을 이루겠다는 의장성명이 이날 채택됐다.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11월 태국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타결된 것을 거론하며 “내년 RCEP 협정문이 서명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아세안은 경제·사회·문화 분야 등에서 서로의 경계를 허물자는 인식을 공유했다. 일본의 영향력이 여전히 큰 아세안에서 이번 정상회의가 한국의 수출 시장 확대의 발판이 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세션에서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역내 교역·투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아세안 국가들과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며 자유무역 가치 수호의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발효한 ‘한·아세안 FTA’는 역내 교역 확대와 경제발전의 주요 동력이 됐다”며 “더 높은 수준의 규범을 담고 있는 RCEP는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을 하나로 통합하는 거대한 경제블록의 시작을 알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내년도 최종 서명으로 역내 ‘무역공동체’ 구축의 중요한 토대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아세안 정상들은 이날 공동의장성명을 통해 RCEP에 참여하는 15개 국가가 현대적이고 포괄적이며 높은 수준의 상호호혜적인 RCEP 협정 문안을 타결한 데 환영의 뜻을 표하고 내년 협정 서명을 위해 잔여 쟁점 해결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양자 차원에서도 싱가포르·베트남에 이어 어제 인도네시아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서명했다”며 “앞으로도 말레이시아·필리핀·캄보디아와 FTA 추진으로 무역공동체 구축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말레이시아·필리핀과 양자 FTA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캄보디아와도 FTA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앞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이 중국·미국에 이어 우리 수출의 3위 국가가 된 것은 양자 FTA를 통해 자유화율을 높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인도네시아 등과도 양자 FTA를 맺음으로써 교역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이 지역의 인적 교류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모든 관계 발전의 시작은 사람”이라며 “우리는 1,100만명을 넘어선 한·아세안의 인적교류가 더욱 자유롭게 확대될 수 있도록 비자제도 간소화, 항공 자유화 등 각종 제도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2022년까지 아세안 장학생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아세안의 미래 인재 육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세안 회원국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할 수 있도록 협력을 확대해가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는 공동 번영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도출됐다.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측이 참여하는 산업혁신기구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세안 국가의 경제발전 및 기술발전 단계에 따라 차별화된 협력 방안이 모색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처럼 기술력이 확보된 나라와는 공동연구와 기술사업화 지원을 통해 협력을 추진하고 베트남과 같이 한국 기업과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연계가 활발한 경우에는 현지 기업의 기술 역량을 높일 기술지도사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기로 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혁신기구를 유럽연합(EU)의 유레카나 유럽경제협력네트워크(EEN)와 같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기술협력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아세안은 아울러 표준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표준화 공동연구센터’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세안 지역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역시 전략적으로 재배치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올해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두 배 증액하고 2022년까지 신남방 지역에 대한 ODA를 두 배 이상 확대할 것”이라며 “한국의 우수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고등교육, 농촌개발, 교통, 공공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개발 협력을 강화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부산=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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