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시작된 ‘농민수당’ 도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광역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2020년부터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해 지자체와 중앙정부 차원의 논의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농민수당이 우루과이라운드(UR),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농정 체제 구축으로 농민의 애로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동안 농업 경쟁력과 농업인 소득 제고를 위해 많은 농업·농촌 지원제도가 도입되었으나 농가소득 향상이나 농촌 활력 제고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농가소득은 1990년 도시근로자 가구의 97%에서 70% 수준으로 줄었으며,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은 30% 정도로 20년째 1,000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농가인구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농촌에서 아기울음 소리가 사라지는 등 농촌소멸 위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는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절박함에서 농민수당이라는 자구책을 제시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선심성 포플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농업·농촌의 현실은 탁상공론보다는 절박함에 대한 이해와 그에 합당한 대책마련에 목말라 있다.
UR 이후 많은 예산이 농업인프라(SOC)와 연구개발(R&D)에 투자되었는데, 여기서 생성된 부가가치는 대부분 식품이나 유통 등 후방산업과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했다. 정작, 농가소득, 특히 농업소득 향상은 극히 미미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농업인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증대시킬 실효성 있는 실사구시 대안이 필요하며, 농민수당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할 시기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도시근로자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일으키기 위해 농산물가격을 통제해 왔으며, 오늘날도 정책당국은 농산물가격 상승을 물가관리 정책의 주범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농업·농촌은 국가 전략산업과 국가경제를 위해 많은 희생을 인내해 왔는데 작금의 현실은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는 농업정책의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지속 가능 농업은 붕괴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있어 식량안보와 국민 건강권이라는 농업의 역할, 생태환경 보전·전통문화 유지·수자원관리라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국민의 몫이다. 농가인구 감소는 농촌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져 농촌 소멸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민이 누릴 농촌의 환경 및 안보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농업인이 농업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때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국가자산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
따라서 농민수당이 농가소득을 근본적으로 높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노령농에게는 복지수당이 될 것이고 청년농에게는 기본소득 향상으로 활력 있는 농촌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때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국민의 응원은 향후 지속 가능 농업을 설계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농민수당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지급대상 선정, 지급방법, 예산확보, 지역간 소득불균형, 법제화 이슈 등 많은 난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농촌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 농민은 지자체에서 먼저 시행한 정책의 불씨가 확산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즉, 중앙 정부가 예산이 부족한 지방 정부를 지원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농업인에 대한 사회보장이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 차원을 넘어 미래 국가 기반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적극 검토되기를 기대한다.
*김병국 전 농협중앙회 이사는 한국농업연구소장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현장 연구에 나서고 있다. 서충주농협 조합장을 5선 했고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원장도 역임했다. 최근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국민소통 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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