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내 조선업계에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10월 발주 물량을 싹쓸이하며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선박·해운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수주량에서 한국이 695만CGT로 611만CGT에 그친 중국을 앞지르고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세계 조선산업 업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한국타도를 외치는 중국과 일본이 호시탐탐 역전을 노리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조선업계는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등 고부가가치선까지 넘보고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적용되는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와 함께 기술진보에 따라 스마트선박 등 조선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데 노조의 반발로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다. 최근 김현수 대한조선학회장(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을 만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 조선업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글로벌 조선시장 상황은.
△지금 글로벌 조선시장은 모든 플레이어들에 어려운 시기다. 신조선 발주가 증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 10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1,769만CGT가 발주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한 수준이다. 결국 조선소에서는 도크가 충분히 차지 않고 있다. 이는 일감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매출 하락으로 고정비가 증가한다는 뜻인데 이런 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없다. 이렇게 되면 인력관리나 기술투자 등이 어렵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1,000만CGT는 수주가 돼야 하는데 10월까지 695만CGT를 수주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조선·해운시장에서 가장 나쁜 점은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여건에서는 어느 선주도 전략적으로 과감히 투자(발주)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조선업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지속 가능한가.
△지속 가능하다. 국내 조선사들은 고부가가치선 등 기술력 우위를 바탕으로 일정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내년 IMO 환경규제 발효를 기점으로 점차 강화될 규정들은 우리 조선사들에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IMO 2020’은 황산화 물질 함량을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낮추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신조선뿐만 아니라 약 10만여척에 달하는 현존 선박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는 만큼 그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탈황 장치를 만드는 기자재 업체와 선박수리 조선소, LNG 연료추진 선박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를 개발해 만드는 대형 조선소 등이 수혜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서 앞서는 우리 업체들의 선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
-중국이 요즘 LNG선 등 고부가가치선까지 넘보고 있다.
△아직 중국의 고부가가치선 경쟁력은 한국에 비해 열세다. 조선에 있어서 수주보다 중요한 것은 사양서(仕樣書)대로 건조하는 생산 기술력이다. 비록 중국이 자국발주 혹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LNG 운반선이나 LNG 연료추진선 등 고부가가치선을 수주할 수 있겠지만 우수한 품질로 인도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지난해 중국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 운반선이 두 달째 운항불능으로 멈춘 것이나 최근 중국 최대 조선그룹인 CSSC가 2017년 프랑스 선사(CMA-CGM)로부터 수주한 2만3,000TEU급 LNG 추진 컨테이너선의 인도를 오는 2021년까지 연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소의 경쟁력은 선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수주와 생산 품질의 괴리감으로 선주의 신뢰 확보가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조선업의 부활 가능성은.
△일본 조선업의 부활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일본은 높은 기자재 품질이나 원천기술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발판삼아 기존 상선시장에서의 틈새공략 전략으로 어느 정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오랜 기간 내수물량에 의존해와 대외변화에 대한 대응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한국이 자체 설계기술력으로 대형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추격은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도쿄대에서 조선해양학과를 폐과한 지 20년이나 되는 등 인력 공급과 교육 기회가 단절된 상태다.
-수주가 최악에서 벗어났다지만 본격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내년부터는 업황이 평균 발주량 정도로 회복 가능하다고 본다.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을 고려하면 과거와 같은 이례적인 초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과거 20년의 발주량 추이가 최저점을 기록했던 2016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또 내년 이후에는 IMO 환경규제 강화 이슈로 LNG선 연료가 바뀌는 상황인데다 노후선박의 교체 시기도래,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 등 발전된 기술이 접목된 선박의 스마트화·무인화, 항만과 물류의 스마트화 등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한 수주가 일어나 과거 20년 평균치에 근접하는 세계 발주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는 셈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금 글로벌 조선시장은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어서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대형조선소를 보면 중국에서 선박중공업집단(CSSC)과 선박공업집단(CSIC)이 합병해 생산 규모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 조선소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도 현대와 대우가 합병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글로벌 조선소가 재편되는 시기다. 친환경 선박 연료와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배기가스 규제 등 기술적인 변화, 선박 제품 자체도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시기에 우리가 세계 1등을 수성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접근방식을 달리하는 정부정책, 기업 경영전략, 협력적인 노사문화, 인력 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 체제구축 등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산·학·연·관 모두의 다양한 협력이 긴요하다.
-무엇보다 인력양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학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 한국 조선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우수 청년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조선해양산업은 세계 경기의 흐름에 따라서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불황 때는 미래를 준비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시황이 나빠지며 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져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대 등 많은 조선해양학과 학부생들이 대학원 등에 진학해 연구개발(R&D)에 힘을 보탰는데 지금은 의·치전원 등 다른 분야로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전문가 양성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수한 인력들이 원활히 공급돼 우리나라의 강점인 친환경 LNG 기술경쟁력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안타깝다. LNG와 함께 유망 분야인 수소 선박이나 바람 등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는 기술개발 개발을 하려면 인재 육성이 꼭 필요하다.
-기업 못지않게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인재 양성은 대학이나 기업에만 책임을 지울 일이 아니다. 아무리 침체기라 하더라도 조선산업은 5대 주력산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만큼 중요한 업종이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기업에 여력이 많지 않은 만큼 정부가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조선산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제조업 르네상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수 인재가 조선업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세밀한 액션 플랜을 수립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스마트선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맞춰 자동화 설계, 빅데이터화에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정부 주도로 대비책을 서두르는 것도 중요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도 시급한데 노조 반대가 여전하다.
△노사가 현 상황을 냉철하게 보고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어느 제조업이든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라인의 변화는 불가피하고 인력 순환배치와 효율적 활용은 회사 경쟁력과 바로 직결이 되고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조선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노조는 쉽고 편한 현재의 일자리만 지키려고 하는 것 같다.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일자리 상황도 변할 수밖에 없다. 직무전환 등으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빨리 자각할 필요가 있다.
-학회장으로 포부는.
△첫째는 국제화 강화다. 국제화와 관련해 나름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학회 주관으로 운영되는 국제 학회가 아직 없는 상태다. 세계 1위 조선국 위상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올해와 내년 열심히 준비해서 학회 창립 70주년이 되는 2022년에 첫 국제학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두 번째는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 마련이다. 요즘처럼 조선경기가 어려울 때 학회 재정이 심하게 어려움을 갖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하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 모교에서 조선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학위는 부산대에서 취득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1993년부터 15년간 삼성중공업 연구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이후 인하공업전문대 조선해양과 교수로 옮겨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쇄빙선 등 빙해 선박 전문가로 ‘선박계산’ ‘선박제도’ 등을 집필하고 최근 5년간 해외 학술지에 5편, 국내 학술지에 4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올 10월 전문대학 교수로는 처음으로 대한조선학회 회장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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