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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24/7]의무기록 분석만 수개월...꼼짝못할 증거 잡아 의료과실 '메스'

■서울청 의료수사팀

의료사고 나면 의사협회 등에

환자처방 적절성 등 감정 의뢰

'강남 성형외과 수술 사망사건'

의사 과실 입증 등 속속 성과

의료진 '동료 감싸기' 등 장애물

한 사건 수사 최장 2년 걸리기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하고

전문성 갖춘 인력 대폭 늘려야

서울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의 조사 모습./권욱기자




지난 2016년 8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분당차여성병원은 방금 숨진 신생아의 의무기록 한 줄을 지웠다. 제왕절개 수술 직후 신생아를 넘겨받은 레지던트 A씨가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아기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고 몇 시간 후 사망했는데 이를 수술 기록지에 남기지 않은 것이다. 아기 부모에게는 미숙아라 사망했다고 알렸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는 설명은 하지도 않았다.

2년 후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은 병원이 의무기록을 삭제하고 유족에게 사고를 은폐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결국 담당 주치의 2명이 구속되는 등 사건 관련자 총 10명이 검거됐다.

흔히 의료 과실 입증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비유된다. 의료진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진료 기록 등이 모두 병원에 있는데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피해자가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수평으로 맞춰주는 것이 경찰 의료수사팀이다.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2014년 의료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의료 분야에 대한 경찰 수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2015년 서울청에 처음으로 광역수사대 산하에 의료수사팀이 신설됐다. 이후 주요 사건들을 수사하면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박창환 서울청 광역수사대 광역2계장은 “의료수사팀은 의료 과실을 해부하고 파헤치는 메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며 “수사가 성과를 내면 살인사건 이상으로 유족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감정’이 가장 중요한 단계=의료수사팀은 서울청에 처음 만들어진 후 현재 전국 9개 지방청에 설립됐으며 총 48명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청 내 의료수사팀은 수사관 7명과 검시관 1명으로 구성됐다. 검시관은 사체를 확인하고 사건 초기 의무기록을 분석해 수사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환자가 사망해 고소·고발이 접수됐거나,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처럼 변사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 의료수사팀이 수사에 착수한다. 우선 부검을 통해 사인을 찾고 의무기록 분석과 혐의자 조사 등을 실시해 사인이 무엇인지, 의료 과실이 있었는지 규명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이다. 대한의사협회나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같은 기구에 수차례 감정을 의뢰하고 이를 종합해 수사 결과를 도출한다. 강윤석 서울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 팀장은 “단순히 의료진 과실 여부를 감정해달라고 의뢰하지는 않는다”며 “환자에게 적정량의 약물을 투여했는지, 환자의 병력이나 나이·상태를 따졌을 때 처방은 적절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의뢰한다”고 설명했다. 감정도 일종의 과학수사라는 게 서울청 의료수사팀의 설명이다.

2016년 9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사각 턱 교정 수술을 받던 권모(당시 25세)씨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고 49일 만에 사망했는데 서울청 의료수사팀은 당시 의사가 지혈 및 수혈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의료진 6명을 검거했다. 서울청 의료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의료수사팀이 뜨면 강남 성형외과가 잔뜩 긴장한다는 말도 돈다”고 귀띔했다.



◇길게는 2년… 지난한 수사과정=다만 의료수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일이라 수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 사건을 수사하는 데 6개월은 기본이고 길게는 2년도 걸린다. 의무기록을 분석하는 데도 꼬박 수개월이 소요되고 감정 기간이 길게는 1년이 넘을 때도 있다. 서울경찰청에 의료수사팀이 생긴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직접 수사한 사건은 28건 정도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정을 의뢰할 때도 고려할 점이 많다. 예를 들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경우 그 대학을 제외한 다른 대학 의사에게 감정을 맡긴다. 감정 결과를 받았다고 해서 수사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의료진이 진료 기록지를 조작했는지, 잘못을 숨기기 위해 말 맞추기 등 은폐 시도를 했는지도 꼼꼼하게 입증해내야 한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청 의료수사팀은 경험이 많은 서울청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강 팀장은 “서울에 메이저 병원이 몰려 있고 이에 굵직한 의료 과실 사건도 종종 발생해 서울청 의료수사팀이 의료수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소위 수사 ‘임상’ 경험이 많기 때문에 지방청에 수사기법을 알려주고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설치된 수술실 CCTV 모습./사진=경기도


◇인력풀 늘려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도 도움=의료수사팀이 더 성과를 내려면 인력풀 확대는 필수다. 단순히 수사관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보다는 의료 전문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면서 열정과 의지가 있는 전문 수사관 풀을 늘려 언제든지 수사에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도 수사에 도움될 수 있다. CCTV 영상이 없는 경우 의료진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경기도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수술실 CCTV를 시범 운영한 뒤 주요 도시 병원으로 전면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의사단체들이 의사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의료수사팀에 대한 의사집단의 반감을 해소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박 계장은 “의료수사팀이 의사를 잠재적인 범죄인으로 취급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사들의 잘못 자체가 아닌 잘못을 한 이유를 수사한다는 점에 더 초점을 맞춰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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