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전문가가 권리 분석하여 전국 법원에서 경매로 싸게 구입한 땅이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가 들어서면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인근에 케이팝 전문 공연장도 들어오기로 예정되어 있다. 몇 년안에 땅이 개발이 되고 땅 값이 크게 오를 것이다.”
2018년 10월 A씨는 우리경매 계열 기획부동산의 광주지사 사무실에서 이같은 설명을 듣고 서울 도봉구의 한 임야 지분 100평을 1,290만원에 매입했다. 이 지사에서는 A씨 외 8명에게 이같은 설명을 통해 임야 지분을 총 1억5,325만원어치를 팔았다.
하지만 이 토지는 개발제한구역·문화재보호구역·보전산지·비오톱1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 부지였다. 또 고지대에 위치해 진입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획부동산이 호재로 언급한 케이팝 전문 공연장은 창동역 주차장 부지에 건립이 계획된 ‘서울 아레나’로 추정된다. 서울경제가 이 임야 지번을 확인한 결과 거리가 직선으로 4㎞ 정도이며 그 사이엔 주거지와 산자락이 껴 있는 상황이었다.
광주지검은 이 토지 판매에 대해 사기라고 판단하고 지난 10월 16일 우리경매 황모 회장, 노모 총괄사장, 박모 지사장을 구속기소했다. 앞서 광주 서부경찰서는 이들 3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또 본사와 지사 간부급 직원 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 12월 우리경매의 광주지사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후 9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나온 결과다. 토지 지분을 쪼개 판 기획부동산에 대해 사기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단독] “기획부동산 ‘지분쪼개기’는 사기” 우리경매 회장 구속기소…형제社 케이비도 수사 임박]
3일 서울경제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우리경매 경영진 3명의 공소장을 보면 이들은 판매하는 토지와 입지 조건 등이 상이한 토지 개발 사례를 언급하면서 판매 토지 역시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판매한 토지의 용도·입지 조건을 봤을 때 개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봤다. 또한 매매 계약 당시 피해자들이 시세보다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매입한 것도 문제라고 봤다.
실제로 경매전문가가 경매로 싸게 구입한 땅이라는 업체 설명부터가 거짓말이었다. 이 임야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한 일가족 5명이 상속으로 분할해 보유하고 있던 땅을 기획부동산 업체가 매매로 구입한 것이었다. 또 업체의 평당 매입가는 2만5,737원이었는데 앞선 피해자의 경우 12만9,000원에 매입했다. 즉 5배의 가격에 되판 것이다.
또 검찰은 공유지분 등기자들이 보유한 지분 전체를 일괄 처분하거나 분할 등기할 계획이나 방편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 것도 사기 혐의 판단에 고려했다. 실제로 여러 기획부동산들이 이 토지 지분을 수백명에게 쪼개 판 탓에 이달 현재 토지 지분 공유자는 900여명에 달한다. 검찰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고객들이 지가 상승으로 인하여 이익금을 취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외에도 검찰이 사기로 판단한 지분 판매 토지는 3곳이 더 있었다. 이 업체는 경기 광주시의 한 임야에 대해선 “인근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대단위 물류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라고 판촉해 총 17명에게 2억6,197만원어치를 팔았다. 그러나 그 임야는 팔당호에 인접한 토지로서 개발제한구역·보전산지구역·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진입로도 확보돼 있지 않았다.
이들이 13명에게 총 9,583만원어치를 토지 지분을 판매한 경기 성남시의 한 임야의 경우 “인근에 판교 테크노밸리, 수도권 2기 신도시가 들어올 예정이고, 도로가 개통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개발제한구역·보전산지·도립공원·공원자연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행위가 불가능했다. 또 해당 토지에는 지하터널이 개통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고지대에 위치한 임야로서 진입로도 확보돼 있지 않았다.
경기 하남시의 한 임야는 “인근에 고속 도로가 개통되고 위례신도시가 들어올 예정이며, 사조개발에서 보유한 토지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호재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임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 성벽과 인접해 있어 역사문화환경보전지구 1구역으로 지정돼 있었으며 개발제한구역·문화재보호구역·보전산지·도립공원이기도 했다. 이 업체는 이 토지의 지분 일부를 총 9명에게 1억5,325만원에 팔아 넘겼다.
황 회장은 2017년12월19일부터 2018년11월2일까지 관할관청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다단계 판매업을 영위한 혐의(방문판매법 위반)로도 기소됐다. 황 회장은 다단계 방식의 부동산 판매업체를 본사로 설립하고, 본사가 매입한 토지를 판매할 목적으로 두 회사를 추가 설립하여 지사 형태로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회사 직책을 이사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본부장, 부장, 과장(전화 상담원) 등으로 둠으로써 판매원의 단계를 3단계 이상으로 유지했으며, 직원들이 자신의 하위 판매원을 모집하게 하고 과장이 신규 과장을 추천하여 입사시킬 경우 0.3%의 충원수당을 지급했다. 과장이 토지를 판매할 경우 과장에게 토지 판매액의 10%를, 부장에게 2%를, 본부장에게 1%를, 상무·전무·부사장·사장에게 1.2%~2%를, 이사장인 본인에게 4%를 수당으로 지급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31일 서울경제가 내부자료를 입수해 기획보도한 케이비경매 계열 기획부동산의 형제 회사다. 구속된 황 회장은 케이비 황모 회장의 친동생이며, 노 총괄사장은 케이비경매에서도 대표를 맡고 있었다. 두 회사의 창업주는 어머니 김모씨로 회사에서는 명예회장으로 불린다.
우리경매는 서울경제가 4월 ‘2018년 6월1일~2019년 4월12일에 공유인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상위 50개 필지’를 분석했을 때 최다인 25곳에 관여했으며, 케이비경매 관여 토지는 21개로 두번째로 많았다. 당시 두 회사는 토지를 서로 공유하며 교차 판매했다. 총 예상 매출액 6,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케이비경매가 지난 3년여간 판매한 토지 222개도 대부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단독] 두 ‘큰손’ 기획부동산, 年1조어치 땅 판매 ‘쥐락펴락’…갖고보니 ‘기획된 땅’]
개발 가능성이 희박한 토지 지분을 쪼개서 파는 행위 자체가 사기라는 수사기관의 판단이 나온 만큼 다른 기획부동산으로도 수사가 확대되는 게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경매는 전국에 십수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형제회사인 케이비경매도 전국에 20여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경찰은 이미 우리경매의 다른 지점 및 케이비경매 등에서 벌어진 사기 판매 및 횡령·탈세 혐의를 포착하고 내부에 전파했다. 또한 검찰에도 이들 업체에 대한 수백명의 고소장을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공유 지분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분권자의 과반 이상이 동의해야 하고, 토지 분할을 하려면 전체 지분권자가 동의해야 하므로 각 지분권자의 재산권은 대폭 제약된다”며 “지분권자가 경매 제도로 공유분 분할 청구를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토지 가치가 4분의 1 가량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전무하다”고 했다. 이어 “수백명이 공유하고 있는 토지 지분은 공인중개사들이 매물로 받아주지 않으며, 대출도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발이 제한된 땅의 지분을 허위·과장 광고를 통해 매입가의 수배에 파는 기획부동산의 업태가 사기임이 이번 검찰 기소로 확인됐다”며 “나머지 업체들에 대해서도 검찰·경찰이 신속히 수사에 나서 서민들의 추가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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