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키워 이직을 하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노동의 유연성의 열쇠를 회사가 아닌 직원이 쥐고 있는 것이지요.”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스마트북스 펴냄)’를 쓴 유호현 씨는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직원들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가는 데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우연한 기회에 트위터로 입사했다. 한국어 자연언어 처리 전문가를 찾던 트위터에 그가 적임자였던 것. 국내에서 자칫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 될뻔했던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변신했다.
현재 에어비앤비에서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일하는 그를 문자와 e메일 그리고 인터넷 전화로 만났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는 한 분야에서 상위 1퍼센트 안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날 것, 둘째는 세 가지 분야에서 상위 25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라면서 “두번째에 해당하는 저는 한국어 원어민이라는 것이 장점이었고, 언어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한국어 텍스트를 기계언어로 처리하는 법을 배운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트위터가 찾던 적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 엔지니어는 문과 출신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길은 녹록지는 않았다. 그는 “컴퓨터관련 전공자가 아닌 탓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하는 바람에 실수도 잦았다”면서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해 서비스를 여러 번 다운시키기도 했고, 데이터베이스를 중복으로 만들어 불필요한 비용을 쓰기도 했다”면서 첫 직장에서의 실수를 털어놨다. 그는 이어 “하지만 멘토링 문화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면서 “무늬만 멘토링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인사평가 과정에서 가장 큰 항목 중 하나가 다른 팀원들을 도운 멘토링 점수인데, 다른 동료의 생산성을 높이고 회사와 팀을 함께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트모르템(postmortem)’ 제도는 개인의 실수를 공유해 조직 내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 포스트모르템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검이라는 의미로 실리콘밸리에서는 실수로 인해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상황을 자세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일종의 인트라넷이다. 실수한 사람이 포스트모르템을 입력한 후 저장하면 그 내용은 직원 모두에게 발송된다. 그는 “처음에 포스트모르템을 쓸 때 인사고과에 감점되어 승진에 문제가 생기는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되레 회사 측에서 상세하게 작성해 주었다고 칭찬을 받았다”라면서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이 있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승진하는 데 가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곳에서는 안타까운 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때 사체를 부검하지 않으면 좀비가 되어 돌아온다고 믿는다”면서 “개인의 실수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고 징벌하는 데 집중한다면 시스템 내부에는 좀비가 살게 되고 오류가 누적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포스트모르템”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스타트업의 혁신은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드는 데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만약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테슬라를 설립했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엄청난 돈을 잃었고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으며, 치열한 경쟁의 현장인 자동차 시장에서 오랜 시간 고전하고 있어요. 테슬라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같은 시행착오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가 전기자동차의 대중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가 세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미션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8년여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책에 담았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혁신을 거듭할 수 있는 조직 운영과 문화를 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세하게 소개한다. 유 엔지니어는 “국내기업들이 생존이 기업의 목표라면 이곳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미션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면서 “‘Belong anywhere(어디서든 편안하게)’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에어비앤비가 자신들이 제시한 미션을 완수한 후 회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이곳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면서 “첨단 기술이라고 무조건 받아 들이기 보다 그 기술이 자신의 회사가 세운 미션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지에 대한 검토가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