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식은 여러분(기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들은 산식을 알 필요 없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정당별 의석을 나누는 계산법에 대해 한 말이다. ‘국민들은 몰라도 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4개 군소야당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선거법을 이달 17일까지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여권의 선거법 날치기 계획은 장기집권 음모에 따른 것”이라며 결사 저지 각오를 밝히고 있다.
대치 정국의 뇌관인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사이트에서 찾아 꼼꼼히 읽어봤다. 심상정 의원 등 여야 4당 의원 17명이 발의한 법안이다. 법안을 펼치는 순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석패율, 6개 권역별 비례대표 등 언뜻 알기 어려운 용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지역구(225명)와 비례대표(75명)를 합친 전체 의석을 할당한다. 석패율제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지역구 후보자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제해주는 제도다. 석패율 수혜 정당에도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 있어 ‘군소 정당 대표들을 위한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안 내용 중 50% 연동형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1차 할당한 뒤 잔여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리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현재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범여권이 고차방정식 같은 선거법을 밀어붙이는 데는 국민들에게 숨기고 싶은 전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복잡한 법 조항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위헌 소지가 있다.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얻게 되는 제1당과 제2당은 35~40%가량의 정당 득표율을 기록하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을 거의 배분받지 못한다. 한 석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정당투표의 사표(死票) 현상이 나타나므로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 법학자들의 지적이다. 둘째, 자칫 ‘위성 정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우려도 있다. 가령 지역구에서 110석을 얻은 A당의 정당 득표율이 35%에 그친다면 비례대표 후보는 전원 낙선하게 된다. A당은 이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위한 별도의 ‘2중대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가설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2005년 알바니아 총선에서 민주당과 사회당은 100석의 지역구 중 각각 56석과 42석을 휩쓸었다. 그러나 민주당과 사회당의 정당 득표율은 고작 7.7%와 8.9%에 그치는 촌극이 벌어졌다. 양당이 각각 4~5개씩의 ‘우당(友黨)’을 만들어 비례대표를 위한 표를 찍어주라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알바니아와 베네수엘라 등에서는 ‘위성 정당’들이 속출하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기했다.
셋째, 다당제를 낳게 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야권 분열을 조장해 여권의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제1야당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도 얻지 못함으로써 견제 기능을 잃어 의회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넷째, ‘연정’에 참여하는 제3당 또는 제4당이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해 꼬리가 몸통을 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연정에 참여한 소수 정당의 포퓰리즘 정책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독일에서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던 녹색당 주도로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섯째,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주도하게 되는 정당 보스와 관료제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위험도 있다. 이른바 ‘손학규 키즈’ ‘심상정 키즈’로 불리는 의원들이 나올 수 있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다. 제1야당을 빼고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면 선거 불복을 낳는 등 정국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여야는 선거제도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선거법 협상에서 접점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합의가 불발될 경우에는 현재 룰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상식에 맞는다. 그래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의회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규칙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경기를 진행하는 것은 반칙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이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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