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의 닭처럼 아이오와의 소·돼지가 문제가 되고 있어요.”
지난 1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이오와에서 유세 도중 지역 경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꺼낸 얘기다. 민주당 주류가 그렇듯 바이든 전 부통령은 대규모 타운홀 미팅과 모금, TV 광고를 통한 선거운동에 익숙하다. 풀뿌리부터 지지세력을 형성해 올라온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외연 확대에 어려움을 겪은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조사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아들인 헌터 바이든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대선 풍향계인 아이오와에서 지지율 1위를 워런 의원에게 내줬다. 현장에 약하다는 게 그의 큰 약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랬던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달라지고 있다. 아이오와 같은 시골 지역을 다니며 일일이 표심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팜벨트(중부 농업지대)의 관심 사항인 농업을 살피는가 하면 유권자 친척을 위한 생일 비디오 촬영과 열 살짜리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주는 것 같은 1대1 접근 전략을 펴고 있다. 최근에는 지지자들 앞에서 질문을 받는 대신 일일이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시골 지역에 살고 있는 유권자들과의 연계를 위해 뛰고 있다”며 “소도시 지역의 민주당원들과 개인적인 연결을 통해 (다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에게 어려웠던 곳에서 모멘텀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뒤늦게 변신한 이유는 명확하다. 한때 바이든 전 부통령을 위협했던 워런 의원이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 같은 좌파정책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사이 중도 성향인 피터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크게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도 후보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4일 바이든 전 부통령이 경선 포기를 선언한 카멀라 해리스 상원 의원을 상대로 러브콜을 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진보 성향의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 유색인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부티지지가 바이든의 지지율을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민주당 내 중도 후보 간 싸움은 치열해지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워런이나 버니 샌더스 후보가 예선(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선(대통령선거)에 나가면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어 이길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워런의 인기가 갑자기 급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을 비롯해 중도 후보들이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나친 좌파 경쟁은 안 된다”고 한 것도 좌파 성향의 후보를 겨냥한 말이다.
이 중 부티지지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백인이다. 그는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나와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다. 새 인물에 대한 갈증도 부티지지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CNN 여론조사에서 부티지지는 아이오와에서 25%의 지지를 받아 16%를 얻은 워런, 15%로 동률을 기록한 바이든과 샌더스를 제쳤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시장 재임 초기 흑인 경찰서장 해임으로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데다 흑인들의 경우 동성애에 민감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지지도가 0%로 나온 적도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민주당원들은 압도적으로 바이든을 밀고 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전국단위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응답은 40%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45%)보다 적었다. 아이오와처럼 백인이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부티지지가 선전할 수 있지만 전국구로 나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도 약점이 많다. 억만장자 후보라는 비판 외에 유태인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간 경력 탓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선명성과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블룸버그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난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전국의 민주당원과 독립 유권자 7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로 1위를 기록했고 샌더스 상원 의원은 14%, 워런 상원 의원은 9%를 나타냈다. 신예 부티지지 시장은 6%에 그쳤다. 블룸버그는 4%였다. 특히 워런 의원의 전국 지지율은 4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다만 민주당원들이 덮어놓고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 상황을 고려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인 바이든을 선택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5일 아이오와의 유세 현장에서 있었던 사건은 바이든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날 자신을 83세의 은퇴한 농부라고 소개한 한 유권자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당신은 나이가 너무 많다. 당신의 아들을 우크라이나의 가스회사에 보내 일을 하게 했고 이것이 당신이 자격이 안 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이에 바이든 전 부통령은 “(당신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라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고려하면 아이오와 코커스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도 민주당에는 뚜렷한 후보가 없다는 해석이 많다. 정치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초반 투표가 이뤄지는 4개 주를 △아이오와 부티지지 시장 △뉴햄프셔 워런 의원 △사우스캐롤라이나 바이든 전 부통령 △네바다 샌더스 의원 등이 나눠 가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민주당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샌더스 의원 지지층 간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분열로 내년 대선을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