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에는 두 얼굴이 있다.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태평양 지역이 있고, 동쪽으로는 문화·인종·기후적으로 대비되는 카리브 지역이 있다. 그중에서도 리몬(Limon) 지방은 대표적인 카리브 문화를 자랑한다. 영어가 통용되고 자메이카 향기로 가득한 이국적 풍경도 연출한다. 열대기후에 거북이·나무늘보·이구아나·원숭이 등의 천국이며 35개종 산호초, 400여개 어종이 서식한다. 대항해 시대인 1502년 콜럼버스가 도착했고, 역사적으로 커피와 바나나 재배의 유입경로이기도 했다. 지리적 특성상 유럽과의 해상무역의 관문이며, 유럽 유람선이 드나드는 항구도시다.
코스타리카는 섬나라도 카리브 공동체 회원국도 아니지만 트리니다드토바고처럼 카리브 문화 특히, 칼립소(Calypso) 음악을 공유한다. 칼립소는 쿠바의 손(son)·레게, 자메이카의 스카 등이 융합된 형태로 아프리카계(afrodiaspora) 음악이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기원과 역사적 발전은 그야말로 바람과 파도만이 아는 대답이다.
월터 퍼거슨(Walter Ferguson), 올해 100세로 칼립소 싱어송라이터이자 문화의 아이콘이다. 현대 칼립소의 아버지로도 불리며 바빌론·세레나데·봄베로·룸바 등의 노래를 불렀다. 그의 생일 5월7일은 코스타리카 칼립소의 날로 공식 지정됐고, 그의 이름을 딴 연례 국제 칼립소 축제도 열린다. ‘칸토아메리카(Cantoamerica)’라는 코스타리카 칼립소 밴드가 결성돼 세계적으로 공연하는 것도 그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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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 부통령 엡시 캠벨(Epsy Campbell)의 주선으로 이 전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여행 채널에서 조명했던 세계적 거장이지만, 칼립소의 요람으로 유명한 ‘카우이타(Cahuita)’라는 국립공원이자 작은 도시 속 그의 자택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 100년의 음유 가수에게 인사를 건네자, 생애 마지막 선물이 될 것 같다며 칼립소 CD를 내게 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 주로 활동했기에 카세트로 집에서 직접 곡을 녹음했고, 2002년 가족형 호텔(Sol y Mar)에서의 첫 CD 음반녹음도 매트리스 등을 동원해 방음조치를 했다고 한다. 평생 전원생활과 노래로 살아와서인지 카우이타 밖을 여행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푸라비다(pura vida)라는 삶에 만족한다고 한다. 자녀들의 소박한 꿈은 작은 칼립소 박물관 건립이다.
칼립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카리브 대중음악 칼립소에 관한 연구(김용호, 2017)’ 등에 따르면 카리브 하위주체의 대중음악으로 저항문화이자 삶의 희로애락을 나눈 가락이라고 소개돼 있지만, 정작 퍼거슨은 동 의미를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코스타리카의 8월은 아프리카계 문화의 달로 칼립소가 상징하는 다양성 증진과 균형발전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시기다. 마지막 날에는 대통령과 외교단 등도 참석하는 퍼레이드도 있다. ‘모두가 같아야 한다’가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은 발전과 도약의 에너지다. 2001년 유네스코 문화적 다양성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이 강조하듯 이는 인류 공동유산이자 인권에 대한 약속이다. 코스타리카 헌법 제1조는 코스타리카가 다인종·다문화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문화가 국가적 가치로 존중하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가치가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에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콜롬비아에 소설 ‘100년의 고독’이 있다면, 코스타리카에는 칼립소 ‘100년의 노래’가 있다. 칼립소로 태어나 칼립소로 죽을 것이라는 월터 퍼거슨의 고유문화 사랑과 메시지는 코스타리카를 더욱 빛나게 한다. 한 개인적 삶의 맥락을 훨씬 뛰어넘는 사회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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