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레드라인(금지선)’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개발과 관련이 있는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밝히면서 양측이 지난 2017년 ‘화염과 분노’로 표현되는 극한 대립국면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무력사용 가능성을 거론한 만큼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기 전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연될 우려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해발사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관련된 곳으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을 목전에 두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강도를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고 발표했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대변인은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며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이 중대한 시험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창리 발사장이 그간 인공위성 발사체나 ICBM 개발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인 만큼 이와 관련된 시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군 간부들을 대거 동원해 군마를 타고 ‘정치적 결단’의 장소인 백두산에 오른 점을 고려하면 이번 시험에서는 ICBM 발사 등 북미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길’을 구체화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관측된다. 북한이 연내 비핵화 협상 결렬 시 트럼프 대통령의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신호를 미 측에 발신한 것으로 해석된다. ICBM은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단을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며 재선을 준비 중인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존재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그는 내가 다가오는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며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지 않지만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ICBM 도발이 내년 있을 미 대선에 악영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형 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의 대변인 담화인 점과 ‘전략적’ 지위‘라는 단어를 볼 때 북한이 ICBM의 고체연료 시험에 나섰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고체연료는 충전시간이 필요 없어 기존의 액체연료보다 발사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미사일을 탐지하고 요격하는 대응이 쉽지 않아진다. 북한은 2017년 3월 18일에도 서해발사장에서 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ICBM용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인 ’대출력 발동기(고출력 엔진) 지상분출시험‘을 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이 신형 미사일들을 시험하면서 미사일 엔진의 연료를 기존 액체에서 고체로 전환하고 있는 정황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이미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화성 14·15형 ICBM 발사에도 성공했지만, 아직 ICBM을 발사할 수 있는 고체연료를 갖추지 못했다”며 “이번에 ICBM용 고체연료 엔진의 연소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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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각에서는 북미가 협상 판을 깰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협상 재개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며 “우리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유지하길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에 대해 “내가 3년간 매우 잘 지내온 사람”이라고 밝히며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한다는 시그널을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
한편 로이터·AP통신에 따르면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향후 북미협상과 관련, 비핵화 이슈는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졌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미 간 ‘뉴욕채널’을 맡고 있는 김 대사는 일부 외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화는 시간을 벌려는 속임수”라며 트럼프 미 대통령의 내년 재선 행보를 위한 국내 정치적 목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미국과의 긴 대화에 나설 필요가 없다”면서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발언은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전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 바로 다음날 나온 것으로 대미 강경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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