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워킹맘 손연주(40) 씨는 올해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쇼핑몰에서 괜찮은 가격에 다양한 반제품 파티용품들을 차곡차곡 사모으기 시작했다. 거의 완제품에 가까운 물건에 색칠 등 약간의 노력만 더하면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소품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손 씨는 기대하고 있다. 내 손으로 만든다는 특별함 때문에 아이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 생일 등 다른 행사에도 활용할 생각이다.
# 30대 직장인 이지선(31) 씨는 최근 가구를 만들어 자신의 원룸을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방 크기에 맞는 목재를 주문하면 크기에 맞게 재단돼 도착하는 한 목재 공방을 알게 된 후 찾아온 일상의 변화다. 이 씨는 작은 주방의 찬장부터 밥상으로 쓰고 있는 탁자까지 손수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 씨가 이렇게 생활 가구 만들기에 푹 빠지게 된 데에는 목재 공방에서 대부분 공정을 끝낸 후 조립만 하면 완성될 수 있도록 반제품 형태로 보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DIY(Do It Yourself) 제품이 다시 한 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처음부터 만드는 DIY와 달리 완제품에 가깝게 만들어 놓은 후 약간의 공정만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뒀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아예 80~90%까지 거의 제작이 끝난 상품도 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생산자는 제작에 필요한 인건비와 운송비를 아낄 수 있으며, 소비자는 완제품과 비슷하거나 낮은 가격에 내 손으로 만든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된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반제품은 가구, 생활소품, 식품, 베이킹, 장난감, 휴대폰 케이스 등 DIY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다양하다.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반제품을 검색했을 때 조회되는 제품 수만 해도 수만 개에 이를 정도다.
최근에는 연말을 맞아 파티용품이나 눈사람, 크리스마스트리 등 연말용 소품을 만들기 위해 반제품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의 한 백화점 내 생활용품 매장을 찾은 김수지(26) 씨는 “반제품으로 물건들을 만들면 시간도 적게 들고 나만의 물건도 만들 수 있어 이번에 만들어 보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목재 공방의 한 직원은 “요즘에는 완제품을 찾는 사람보다 자신이 직접 만들겠다며 치수에 맞춰 제작해달라는 문의를 많다”며 “공구는 뭘 써야 하며 마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거나 자신이 직접 배우러 오겠다는 소비자도 늘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식품 분야는 일찌감치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두터운 소비층을 형성해가고 있다. 서울에서 10년째 자취하는 직장인 오진혁(30) 씨는 식료품 새벽배송 업체에서 판매하는 반제품 식품을 통해 대부분의 식사를 해결한다. 오씨가 시키는 품목은 대부분 모든 재료가 손질돼 있어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국이나 찌개 다. 그는 “양을 조절하기 힘들고 재료를 사와 직접 조리해 먹을 경우 번거롭기 때문에 반제품으로 된 식품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내놓은 ‘2019 가공식품 세분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HMR(Home Meal Replacement· 일부 조리가 된 상태에서 가공·포장된 즉석식품)로 대표되는 식품 반제품 시장은 2017년 2조7,421억원(출하액 기준)에서 지난해 3조2,000억원으로 20% 성장했다.
반제품 열풍의 이면에는 ‘횰로’(‘홀로’와 ‘욜로’의 합성어로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포미’(자기에게 가치 있고 만족을 주는 제품은 다소 비싸더라도 과감히 구매하는 사람) 등의 신조어가 보여주듯 자기 중심의 소비 경향이 자리한다는 지적이다. 큰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물건을 제작해 ‘편리함’과 ‘성취감’을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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