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레드라인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구체화하자 미국이 9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이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유엔 안보리 소집은 강력한 추가 대북제재와 함께 외교적 고립의 심화라는 직접 타격을 북한에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실질적인 압박 카드로 평가된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안보리가 미국의 요청으로 11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도발 확대 가능성 등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고 보도했다. 안보리는 세계 인권선언의 날에 맞춰 10일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루려 했지만 미국의 요청으로 논의 주제가 북한의 미사일 문제로 변경됐다.
외교가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미국이 안보리를 소집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이 지난 8일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히며 비핵화 협상의 레드라인을 넘을 조짐을 보인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미 압박 수위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도를 넘어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2019년 정세 평가 및 2020년 전망’을 주제로 열린 극동문제연구소의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안보리 요청은 대선 전 고민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북한에 ICBM 도발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차원”이라며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사전 제압해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가려는 영역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추가 제재와 동시에 중국과의 마찰은 김 위원장의 ‘자력갱생’ 구상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만큼, 중러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경우 북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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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대북제재를 위한 안보리 소집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온 북한은 미국의 경고에도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대미 도발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북한이 보여준 대외 메시지가 미국의 상응조치 전 대화는 없다는 일관성을 띤 점을 볼 때 김 위원장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북미 간의 갈등이 날로 격화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ICBM 발사는 북한의 손해가 큰 장사라 김 위원장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재 북미관계는 긴장이 악영향을 주면서 확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북한이 전격적인 ICBM 발사 등 셈법을 바꿀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국내 정치적 요인으로 양보의 여지가 없는 만큼 내년 한반도 정세도 어둡게 내다봤다. 김 교수는 “탄핵 정국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비핵화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김 위원장이 잘 이해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은 현재 새로운 길에 대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력갱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책임을 미국에 돌리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내년 (남북관계의) 답보 국면 속에서 한반도 또한 긴장이 고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특히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신년사에 무엇을 담을지와 이에 대한 대책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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