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2월16일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이 새로운 훈장을 선보였다. 목적은 출산 장려. 아이를 8명 이상 낳으면 제1급 훈장, 6명 이상이면 2급 훈장, 4명 이상은 3급 훈장을 줬다. ‘모성 명예훈장(Cross of Honour of the German Mother)’ 제도가 시작된 1939년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아 60세 이상 어머니에게만 훈장을 주다 1940년부터야 전체로 대상을 넓혔다. 각종 우대 혜택도 뒤따랐다. 버스나 전차 같은 공공요금 면제에서 의복과 음식, 주택 마련과 자녀 학교 배정까지 우선권을 인정받았다.
훈장 소지자가 출산할 때는 가장 뛰어난 간호사와 조산사를 붙여주고 정육점에서는 같은 가격에 최고 등급의 고기를 내줬다. 히틀러는 전쟁을 하려면 인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집권 초 독일 인구는 1차대전 수준인 6,600만명 선에 머물렀던 상황. 오스트리아와 체코 일부 합병을 통해 8,060만명으로 늘어났어도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프로이센이 18~19세기 인구를 크게 늘리며 열강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이래 지금까지 인구 증가는 독일 지도자들의 제1 정책과제다.
소련도 전쟁으로 인구가 3,000만명 이상 사라진 1944년 독일의 뒤를 따랐다. 연방영웅과 사회주의노력영웅에 이어 세 번째 영웅으로 ‘모성영웅(Mother Heroine)’ 제도를 도입했다. 아이를 10명 이상 낳아 양육한 어머니는 ‘모성영웅’, 7명 이상은 모성영예훈장, 5명 이상이면 모성 메달을 줬다. 수훈의 등급에 따라 공공 서비스 비용 면제와 생필품과 식료품 배급, 연금 가산 등의 특전이 뒤따랐다. 소련 해체 직후 없어졌으나 각 공화국에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인구는 여전히 중대 현안이기 때문이다.
훈장과 각종 혜택 등 당근으로 출산을 유도하는 게 전체주의 국가의 전유물로 보이지만 실은 프랑스가 원조다. 1차대전에서 젊은 남성이 많이 죽은 프랑스는 1920년부터 출산훈장 제도를 운영했다. 출산 훈장의 수훈자는 당초 예상보다 많아 독일 470만명, 소련에서는 1,315만명이 관련 훈장을 받았다.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출산에 대한 유럽권의 관심이 애초부터 지대했다는 점. 첫 번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출산 포기는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라며 미혼세까지 걷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시각대로라면 인구절벽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은 집단적 범죄에 빠진 형국이다. 특히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젊은이들이 희망을 상실한 사회의 미래는 없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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