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전 자유기업원장은 이력이 다채롭다. 연구소 원장으로 경제현장을 누비고 교수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규제개혁위원회와 사회통합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가 하면 민간 싱크탱크 대표로도 활동했다. 10여년 전에는 국내 최고령 래퍼로 활동하며 노래 3곡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은 유튜버로 활약 중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경력들은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관통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자유시장경제다. 김 전 원장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강단에 서서도 시장경제를 설파했다. 지금도 자유시장경제 전도사를 자임하며 한길을 걷고 있다. 1년여 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김 전 원장을 최근 만나 국내외 경제 돌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수년 전에는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까지 만들어 래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시장경제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랩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제법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랩이 쉬운 게 아니더라. 가사를 직접 써야 하고 라임도 짜야 하고 그것을 노래로 부르면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 하고 계신 ‘김정호의 경제TV’ 구독자가 9만명을 넘었다.
△지난해 10월 개설했으니 1년 남짓 지났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데 구독자들이 잘 봐주신 것 같다. 촬영은 자유기업원 연구실에서 하고 직접 편집을 한다. 재미있는 작업이다. 교수나 연구원장 생활과 비교해 유튜브 크리에이터 생활은 상당히 다르다. 교수·연구원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튜브를 하다 보니 시청자들이 들을 만한 이야기들을 찾고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하게 된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인가 .
△미국과 중국 전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중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한 화두다. 좋든 싫든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불가피하다. 중국과 한국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경제적으로 보완적인 관계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정치다. 미국과의 동맹을 생각하면 중국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호주나 유럽연합(EU)처럼 가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현명한 것은 중국과 비즈니스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중국과 경제교류를 활발하게 하면서도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 등 서방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놓지 않는 호주가 좋은 본보기다. 비즈니스와 정치는 별개라는 입장이 필요하다.
어정쩡하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느 쪽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 되더라도 거부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정권이 정치논리에 따라 중국에 치우칠 수는 있지만 국민이 그대로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목소리를 내서 바로잡아야 한다. 결국 국민들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즘 경제가 다 죽는다고 모두 아우성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철강·조선·유화 등 주력 제조업은 지난 2010년 즈음 정점에 달해 지금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출이 줄어든데다 중국에 시장을 뺏겨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조선도 최근 조금 나아지고 있다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공산이 크다. 자영업자 등 영세사업자들은 주 52시간제에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신사업은 기득권의 저항에 막혀 좌초할 위기다. 기존 산업은 무너지는데 신산업은 싹도 틔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나라를 벤치마킹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스스로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연구개발(R&D) 분야의 경우 밤새우는 일이 많은데 일률적인 주 52시간 적용에다 노조 문제 등으로 인해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하는 대책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초입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경제주체, 특히 정부가 위기의식을 빨리 가져야 한다.
-중기적합업종, 대형마트 영업제한 등 약자보호나 공익을 앞세운 정책들이 역효과만 부른다는 비판이 많다.
△우리 중소기업은 독일·스위스 중기처럼 독자적으로 헤쳐나갈 힘이 없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과 정부에 너무 의존적이다. 정책이 그렇게 만들었다. 외국에 나갈 의사도, 독립할 의지도 없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는 정책이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이유다. 대형마트를 막아놓으면 전통시장에 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집에서 온라인 구매를 하는 세상이다. 시장은 거의 완전히 글로벌화돼 있다. 심지어 관광조차도 소비자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한다. 그런데 국내 시장의 경쟁자 몇을 규제한다고 중기나 동네 슈퍼가 살아나지 못한다.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만 죽이고 있는 꼴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정부는 정치논리에만 빠져 있다.
-현 정부도 규제개혁을 강조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오랜 세월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한쪽으로는 규제를 풀어 신산업을 일으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반시장 정서, 기득권 집착 정서를 부추기고 이에 편승해 입법을 하니 규제만 더욱 강해지고 있다. 원래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게 안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규개위가 정부 규제정책을 추인하는 요식행위만 하는 기구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진정한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 정서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팔로어들만 가득하다. 국민들의 생각과 다르다며 설득할 용기를 가진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정서와 반대로 가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게 진정한 리더인데 그러한 용기를 가진 정치인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외국에서도 그런 정치인이 나오기는 힘들지 않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좋은 본보기다. 많은 국민들이 거북해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펴는 용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때 지지도가 바닥인 어려운 여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 결국 영국 경제의 판을 바꾸지 않았나.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이 간다. 아직 변수가 많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강성노조 등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평가받을 만하다.
-최근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하려다 보류했다.
△국민연금을 통한 주주권 행사를 계속 추진하면서 필연적으로 경영에 간섭할 것으로 본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사안의 경우 시민단체 등이 문제 있다고 생각되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노동이사제 등 지금 정부 정책은 주주가치 경영이 아니라 노동자가 좋아하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소비자는 아예 빠져 있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노동자가 편한 길로만 가고 있어 걱정이다. 이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인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평가 때마다 노사관계가 점수를 갉아먹는 주요인이 되고 있는데.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오너를 무력화하려는 것 같다. 과거 사례를 보면 오너가 기업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이 들어섰을 때 초래될 결과는 아찔하다. 1980년대 기아자동차를 생각해보자. 그때 경영자는 주주보다는 정치인·노조와 가깝게 지내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노조와 손을 잡고 초기에는 열정을 보이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실적이 나오지 않자 분식회계에 몰두하다가 결국 회사가 망가지지 않았는가. 노조원들의 일자리는 당연히 사라졌다. 지금같이 노조에 기울어진 정책을 계속하다가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노조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 법을 어기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히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노조가 치외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과도한 상속세가 지속 가능한 경영에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65%에 이르는 경영권 상속세는 부자들을 타깃으로 한 ‘부유세’이자 ‘질투세’다.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데도 이렇게 과도한 상속세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부자들에 대한 반감을 유발하려는 정략적인 발상 때문이다. 상속세 때문에 지금 3~4세 재벌총수들은 모두 전과자이거나 잠재적 범죄자가 되거나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경영권이 정당성마저 없으니 기업 경영이 점점 정치권에 잘 보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이처럼 기업들이 정치권의 눈치만 보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특히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오너가 지분을 사모펀드에 팔 경우 기업이 중국자본으로 넘어갈 우려도 있다. 상속세 문제로 기업승계가 끊기고 오너 리더십이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독일처럼 자식이 부모의 기업을 물려받아 7~10년간 고용을 유지하면 과세를 이연하거나 감면·면제해주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숭실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자유기업원 부원장을 거쳐 지난 2004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자유기업원 원장을 지냈다. 200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2010년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등 정부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 3년간 자유주의 싱크탱크인 프리덤팩토리 대표로 일했으며 한양대·연세대·서강대 등에서 강의도 했다. 지난해 10월 ‘김정호의 경제TV’를 개국해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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