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자 1위 투자 파트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핵심 기술협력 파트너라는 점이다. 한국은 2009년 유럽의 글로벌 연구개발(R&D) 협력 플랫폼인 유레카(EUREKA)에 비유럽국 최초로 가입했다. 이후 10년간 132개 공동과제를 발굴해 1,140억원을 함께 투자하고 R&D 성과를 활용한 시장 개척을 공동으로 진행해왔다. 지난해 한국의 소재·부품 수입 중 EU의 비중은 14.2%로 중국·일본에 이어 3위다.
한국은 유레카 프로그램 외에도 한·EU 주요국과 기업 간 양자 기술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프랑스·스위스·영국 등과 공동 R&D 사업을 별도로 신설해 운영해왔다. 협력 성과도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독일 기업과의 협력으로 한 국내 기업은 출력이 5% 향상되고 앞·뒷면 모두 발전할 수 있는 양면 모듈형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또 다른 기업은 지난해 네덜란드·핀란드 기업과 차세대 네트워크 장비 기술인 광트랜시버를 개발해 매출이 4배 이상 증가했다.
민간의 자체적 기술협력도 활발하다. 2012년부터 삼성전자와 네덜란드 ASML 간 지분투자와 공동 기술협력 덕분에 두 회사는 각각 최고의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세계적 화학 기업인 벨기에의 솔베이는 1975년부터 한국에 실리카(인천·군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울산) 등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이화여대에 R&D센터를 설치하는 등 한국과의 산학 기술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EU와의 기술협력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과 ‘한·독 장관급 산업협력 채널’ 신설에 합의했다. 또 수소경제 등 주요 협력 분야에서 우리 공공연구기관과 독일의 프라운호퍼를 중심으로 중대형 공동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발굴하기로 했다. 기술이전과 상용화를 위한 한·독 기술협력 센터도 독일에 설치한다. 유레카와의 기술개발 투자 역시 2025년까지 올해의 2배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더욱 촘촘해지고 기술의 융·복합화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기술협력은 필수가 됐다. 최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국가 간 입체적 기술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소재·부품과 기초·원천기술이 강한 유럽과 높은 제조경쟁력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서로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다. 한·EU 기술협력은 우리의 소재·부품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글로벌 조달 기회 확대, 기술 신뢰성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함께 인생을 헤쳐나가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국가 간 산업 기술협력에서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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