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미국과 중국이 우여곡절 끝에 1단계 무역합의를 이뤘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 다툼의 성격이 짙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요2개국(G2) 간의 장기적인 힘겨루기가 양국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교역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여전히 안심하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제대로 작동될지는 중국에 달려 있다”고 책임을 미루면서 “2단계 협상 개시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단계 협상을 “멋진 합의”라고 하며 2단계 협상이 ‘곧바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결을 달리하는 말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이어 “2단계 협상은 우리가 1단계를 어떻게 이행할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1단계 합의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1단계 무역합의가 봉합의 성격이 짙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양국 간 합의와 관련해 “법률적 심의와 번역 등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 작업을 마친 뒤 서명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대량구매와 미국의 대중 관세 일부 취소를 맞바꾼 1단계 ‘미니딜’ 합의에 비해 중국의 산업보조금 등 ‘불공정 제도·관행’을 다룰 2단계 합의는 한층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중국의 불공정한 산업·통상정책을 ‘관세’ 무기로 바꾸겠다”고 외쳐왔다.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의 산업발전 정책을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이익으로 보는 만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1단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세계 경제의 동반침체 우려가 여전하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에 비해 0.6%포인트 감소한 3.0%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성장률은 3.4%로 재상승이 기대됐지만 이 또한 미중 양국의 협력이 어느 정도 이뤄진다는 조건 아래서다. 중국도 경제성장률이 3·4분기에 톈안먼사태 직후인 1990년 이후 최저치인 6.0%를 기록했고 4·4분기와 내년에는 5%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5일 “1단계 합의에서 핵심쟁점이 빠지면서 무역전쟁은 길어지고 경제개혁에 대한 중국의 저항도 경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중 무역협상 장기화로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현상’이 미치는 글로벌 경제의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드론 업체 DJI, CCTV 업체 하이크비전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중국도 자국 공공기관에서 외국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퇴출하며 자국 기업 중심의 공급사슬을 만들고 있다. 서로 상대편 없이도 경제운용이 가능한지 시험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파편화되면서 글로벌 교역량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17년 5.7%였던 글로벌 교역 증가율은 지난해 3.6%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1.1%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도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IMF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 여하에 따라 글로벌 교역체계가 흔들리면서 한국의 경우 수출감소분이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3%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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