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덕후’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덕후’란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 ‘오덕후’의 줄임말. 예전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은둔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현재는 어떤 분야에 집중해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덕후의 ‘원조’는 서브컬처, 즉 비주류 문화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엇을 ‘덕질’할까? ‘덕질’은 이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새로 시작하는 ‘덕킷리스트(덕질+버킷리스트)’는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은 덕후들의 세상을 직접 가서 따라해본 기자의 체험기다.
수 많은 ‘덕질’이 탄생하고 스러지는 가운데 명실공히 덕질계의 ‘대부’로 불리는 분야가 있다. 게임, 코스프레, 축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가 하면 무한대에 가까운 상품 출시로 덕후들의 구매 욕구를 폭발시킨다. 간혹 상영회나 팬미팅 행사가 열리면 구름 떼 같은 관객을 모은다. ‘덕질계의 스테디셀러’, ‘덕질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애니메이션 덕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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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덕질, 아이돌 덕질보다 나은 이유” |
애니메이션 덕질은 주로 아이돌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집중된다. 만약 당신이 ‘러브라이브’, ‘아이돌 마스터’, ‘뱅드림’ 등 미소녀 아이돌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제목을 들어본 적 있다면 일단 입문 단계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과 다름없다. 아이돌 캐릭터를 사랑하는 덕후들은 자신들이 아이돌 팬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애니메이션 덕후에 입문해 17년째 아이돌 애니메이션 덕질을 하고 있는 김용민(가명) 씨는 “아이돌 팬들이 아이돌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라며 “캐릭터가 실재하지 않을 뿐 그들을 향한 팬심은 아이돌 팬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선우(가명) 씨는 오히려 아이돌보다 애니메니션 캐릭터가 나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돌들은 사람이라 초창기와 다르게 변하며 팬심을 배신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그렇지 않다. 항상 그대로의 외모와 행동에 팬심도 아이돌보다 더 오래가는 것 같다” 아이돌에게 실망해본 적 있는 기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전통의 애니메이션 덕후들의 덕질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소비할 수 있는 창구들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유료 애니메이션 TV채널 애니플러스가 일본 애니플랙스와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공식 굿즈 및 콜라보 카페, 성우들이 초청된 상영회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콜라보 카페에 경우 4~8주 간격으로 애니메이션 테마가 바뀌는데, 굿즈샵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캐릭터를 보고 즐길 수 있다. 해마다 열리는 애니메이션 관련 축제나 박람회 역시 또 다른 덕질이 가능한 창구다.
보통 애니메이션 덕후는 ‘젊은 성인 남성층’에 국한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린 남녀 아이들부터 중년 남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애니플러스 서울 1호점에 근무하는 매니저는 “고객을 남녀 성비로 따졌을 때 7대 3”이라며 “여성 고객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애니메이션 덕후들은 서브컬처를 보고라고 불리는 ‘루리웹’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구매한 굿즈를 공개하거나 입고 예정상품, 콜라보 카페, 상영회 일자 등의 일정을 공유한다.
“1만원부터 수천만원까지...덕후들의 지갑을 연다” |
수요가 탄탄하다 보니 ‘리셀’ 시장도 크다. 리셀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 상품은 국가 한정판인 경우가 많다. 판권을 가진 각국 업체들이 한정판을 판매하면 업자들이 이를 구매해 덕후들에게 다시 파는 경우가 많다. 애니플러스 MD분야 관계자는 “국내 한정판을 판매하면 보통 긴 줄이 서는데 중국이나 대만 업자들이 상당수 껴든다”며 “상품이 업자들보다 고객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많은 업자들이 이를 구매해 리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니플러스와 일본의 소니 엔터테인먼트 등이 손잡고 지난 14일 개최했던 ‘AGF2019’에서는 주최사인 애니플러스 측이 한정판으로 만든 상품을 4,000원에 판매했는데 리셀 시장에서 20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일본의 10분의 1 수준...대만보다 성장잠재력 커” |
취재가 끝난 후 돌아서는 ‘애알못’(애니메이션 알지 못하는) 기자의 손에는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 극장판’ 버전 스탠드형 굿즈가 하나 들려있었다. 많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눈을 마주치며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한번 시작해볼까’는 구매 욕구와 호기심, 우리나라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상품이라는 설명에 끌려 구매하고 만 것이다. 처음 접한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덕질에 빠져들게 하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와 상품들, 이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 덕질이 덕질계의 ‘원조’로 꼽히며 오랜 시간 장수하는 비결일 수 있겠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렀다.
PS. 올해의 애니메이션 3대장은? |
2.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세계 생활 : 나가츠키 탓페이의 동명의 라이트 노벨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을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나츠키 스바루가 다른 세계로 소환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3.페이트/그랜드 오더(Fate/Grand Order) :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미래가 사라진 인류를 지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시공의 특이점들을 찾아내 그것을 파괴하는 금단의 의식 ‘그랜드 오더’(성배탐색)를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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