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미국 테네시주의 소읍 펄래스키. 남군 출신 6명이 수차례 회동 끝에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악명 높은 백인우월주의자 단체 KKK(Ku Klux Klan)단이 출범한 것이다. 단체의 이름과 유래는 명확한 정의가 없다. ‘백인이 주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또는 ‘백인종족의 화합’을 고대 그리스어와 게일어를 섞어 만들었다는 해석부터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를 단순히 본뜬 것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확실한 것은 초기 지도자. 네이선 베드퍼드 포러스트(44세)를 수장으로 뽑았다.
포러스트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노예무역으로 거부가 되고 학교 졸업장이나 군사 경험이 없었으나 남북전쟁 발발과 동시에 중령 계급을 받고 남군 기마부대를 이끌었다. 대령 승진과 함께 기마여단을 맡은 그는 용맹을 떨쳤다. 종전 당시 ‘소장’급이던 그는 항복한 북군 병사들을 학살한 혐의를 받았지만 전술 측면에서는 적군인 북군에도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이던 그의 손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처음 전사한 미군 장성이어서 미국 남부에는 ‘포러스트’라는 이름을 딴 기념관과 다리·학교가 적지 않다.
초기의 KKK단은 북부의 일방적인 독주에 반박하는 정도였으나 점차 과격해지고 흑인 학살까지 관여하면서 탄압을 받았다. 포러스트가 탈퇴하고 오히려 흑인 민권운동에 돌아서며 거의 없어졌던 KKK는 1915년 다시 태어났다. 최초의 흥행대작인 영화 ‘국가의 탄생’에서 백인 처녀가 흑인 병사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추락사하는 장면이 남부인들의 분노와 단합을 불렀다. 하얀 두건과 불의 십자가도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마침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보수화와 이민 제한, 백인 우월성을 강조한 사회적 진화론의 확산과 함께 KKK단도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결정적인 비결은 ‘피라미드식 다단계 조직화’. 광고 전문가 에드워드 클라크는 단원모집책에게 신입회원의 가입비 10달러 중 4달러를 떼어줬다. 신입이 모집책으로 성장해도 애초 모집책은 일정액을 받았으니 KKK단원은 호구지책으로도 각광받았다. 한때 800만명까지 단원이 늘어나고 4만여명이 수도에서 행진할 정도로 성장했던 2기 KKK단은 대공황과 전쟁의 와중에서 대부분 사라졌으나 아직도 흔적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KKK단을 애매한 표현으로 비호한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다. 하긴 미국 우선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는 뿌리가 같다. KKK의 다음 타깃은 아시아인과 무슬림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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