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노조의 반발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인선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기업은행은 2010년 12월 조준희 전 행장을 시작으로 내부승진 기조를 이어왔다. 내부 출신 행장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당기순이익을 5년 연속 초과 달성하는 등 은행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은행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도 관료들이 입맛을 다셨지만 내부승진의 전통은 이어졌다. 그런데 현 행장 임기를 1년 남짓 남긴 지난해 말부터 관료들이 후보로 떠오르면서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때 유력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 기획재정부 차관에 임명되더니 그를 대신해 복수의 관료들이 경합했고 결국 반 전 수석으로 가닥이 잡혔다.
금융가에서 반 전 수석의 인선에 뜨악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순히 낙하산이기 때문이 아니다. 관료 출신이라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경영할 수 있고 그런 사례도 제법 있다. 문제는 그가 기획예산처 출신으로 금융과 관련 없는 비전문가라는 점이다. 더욱이 그가 초대 일자리수석을 맡아 소득주도 성장을 실행하면서 고용참사가 이어졌고 지난해 6월 경제수석과 함께 문책성 인사로 자리를 물러났음에도 노른자위 보직을 차지하겠다고 나서 금융가는 물론 관료들조차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일련의 인사에서 현 정부 초기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특정 인물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사실 한국 금융산업이 선진국 수준까지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정권에 줄을 댄 인물들이 금융회사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여기면서 정치금융을 해온 데 있다. 노무현 정권에 몸담았던 장관 출신 인사들이 현 정권 초기 급에 맞지 않게 요직을 차지한 것도 그런 악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임기의 절반이 이미 지난 시점까지 ‘자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행장 자리에 빨대를 꽂듯 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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