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드라큘라 전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바토리의 삶은 두 가지로 가득했다. 권력과 미모. 귀족으로 태어나 15세에 결혼, 다섯 남매를 두었으나 헝가리의 전쟁영웅인 남편의 전사로 사별하고 만다. 42세 나이로 미망인이 된 그는 늙어서 새로운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강박감에 젖어 처녀의 피가 젊음을 유지해준다는 미신에 빠져들었다. 납치한 소녀를 긴 못이 박힌 원통에 감금한 뒤 천장에 매달아 흔들어 피를 뽑고는 그 아래 욕조에서 피의 샤워와 목욕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일기장에 적혔다는 희생자만 612명. 실제로는 8~11년 동안 1,568명에 달했다는 추정도 있다. 처녀들이 부족해지자 귀족예절학교를 세워 25명 단위씩 납치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사건에 관련된 하인들은 모두 참수당했지만 그는 귀족이어서 참형을 면하고 독방에 갇혀 4년 후 자살로 추정되는 최후를 맞았다. ‘처녀의 피로 젊음을 유지하려던 백작부인’의 얘기는 모두 사실일까. 반론이 많다. 전사한 남편의 친구이며 중신인 트루조가 부유한 백작부인의 재산을 탐내 음모를 꾸미고, 빚을 지고 있던 대부분의 귀족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해석도 있다.
종교분쟁의 희생양이라는 추론도 나왔다. 신교를 믿는 바토리 가문을 압살하려고 신교 성직자를 고발자로 동원해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수없이 제작된 영화의 방향도 관점에 따라 제각각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따로 있다. 젊음과 돈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동서고금을 초월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젊음을 유지하겠다는 욕망 역시 형태만 변하고 대중화했을 뿐이다. 나이 든 배우의 시술한 흔적이 뚜렷한 얼굴에서 아름다움보다 추함이 느껴진다. 세상의 권력을 다 가졌던 진시황도 생로병사는 넘지 못했다. 고령사회라고 하지만 나이에 걸맞은 지혜와 덕성이 엿보이는 얼굴을 가진 노인이 오히려 그리운 시대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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