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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다인, 약이 되는 시간을 견뎌내며

유다인, 영화 ‘속물들’ 주연

‘속물들’ 유다인, 욕망 좇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변신

“다음 작품에서는 재미있는 악역을 연기해 보고 싶다”

영화 ‘속물들‘의 주역 유다인은 “배우로서 굉장히 강렬한 캐릭터를 만났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촬영장으로 바로 달려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던 유다인에게 가슴 뛰는 설렘을 안긴 영화 촬영을 마치고 나선 도전 의식이 생겼다. ’재미있는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열망이다. 그만큼 유다인의 배우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안긴 작품은 영화 ’속물들‘이었다.

지난 12일 개봉한 ’속물들‘(감독 신아가·이상철, 제작 주피터필름)은 남의 작품을 교묘히 표절하며 활동 중인 미술 작가를 중심으로 뻔뻔하고 이기적인 네 남녀의 속물 같은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유다인, 심희섭, 송재림, 옥자연, 그리고 유재명 등이 출연한다. 2011년 데뷔작 ‘밍크코트’로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던 신아가·이상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속물들’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극 중 유다인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표절하면서도 차용한 것 뿐이라고 우기는 미술 작가 ‘선우정’ 역을 맡았다. 우정은 애인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자존심이 강해 항상 도도한 태도와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그런 우정에게 어느 날 외국에서 살던 옛 친구가 찾아오자 삶이 요동치게 된다.

배우는 “‘선우정’은 굉장히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 때려치우라고 해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 나 또한 10년째 연기를 하고 있는데 비슷한 얘길 들어가면서도 버틴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극이 전개될수록 왜 그렇게 살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나타난다. 선우정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공감하게 됐다. 보시는 분들은 공감은 못 하더라도 이해할 수 는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우정’의 당당함으로 가림 떨리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꼿꼿하게 서서 고개 한 번 숙이지 않는 당당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눈은 언제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배우 역시 “그런 부분을 염두해두고, 인물의 심리 상태를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은근슬쩍 비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선우정’과 한 걸음씩 가까워지면서 유다인은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다고 한다. 영화에 ‘선우정은 미친 듯이 예쁜 얼굴은 아닌데’라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로 배우는 “나도 그런 얼굴이다”며 “데뷔 초에는 ‘네가 무슨 연기를 하느냐. 숫기도 없고 부끄러워하고 얼굴도 빨개지는데’ 이런 식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선우정에게 녹여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하길 잘 했다’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든 일이 다 지구력 싸움 아닌가. 끝까지 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공감이 되더라. 개인적으로 지구력이 없는 편인데 연기에서는 의외인 것 같다. 그만큼 좋아했던 게 연기인 것 같다.”



유다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에 말싸움도 잘 못하는 성격 탓에, 화내고 싸우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 배우는 “몸싸움은 물론이고 말싸움을 진짜 못 한다. 사실 싸운 적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말하기도 전에 울음부터 나왔을 정도인데, 이렇게 경험해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돈이나 명예에 욕심을 가진 이들을 놓고 ‘속물’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에 유다인은 ‘저는 속물은 아닌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돈이 많으면 감당을 못할 것 같다. 스스로 벌이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 그저 나를 책임질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챙길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을 챙길 정도의 돈이라면 가늠이 안되는 금액이라 너무 어마 어마한가요? ”라고 되묻기도 했다.



유다인은 2005년 SBS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혜화, 동‘(2011)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당시 모 관객은 유다인을 놓고 ‘괴물 신인’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여전히 유다인의 가슴에 남아있다. 최근에 ‘속물들’ 시사회가 끝나고 다시 한번 인상적인 평을 들었다고 했다. 유다인의 스타일리스트가 “언니, 영화가 너무 세서 놀랐다. 그런데 언니가 해서 더 셌다”고 했다. “고 털어놓은 것. 그 한마디에 유다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동안 유다인에게 들어오는 역할은 비슷비슷했다고 한다. ‘혜와, 동’ 이후에 정말 해보고 싶은 캐릭터와 만난 배우는 “ 선우정을 연기하고 나니 조금 더 센 역할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사실 ‘속물들’에 출연하기 전 1~2년이 유다인의 슬럼프 기간이었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다. 그는 “예전에는 이런 얘기 하면 울컥했는데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약이 되는 시간’을 버텨 낸 유다인에겐 깊은 눈빛이 묻어나왔다.





“타의에 의해서 일을 못 한 게 아니고 안 시켜준 것도 아니다. 나는 현장이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에너지, 그 사람들과의 작업, 그런 것들이 좋아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이 무서워졌다. 사람들이 ‘넌 잘 될 줄 알았는데 왜 안 되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위축되고 주눅 들어서 촬영장에 가는 게 두려웠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어졌다. 이후에 ‘이래서 못하겠다’ ‘저래서 못하겠다’라며 거절한 작품도 있었다.”

‘속물들’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유다인은 “ 내 정신 상태가 건강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수 있는데 그렇게 못 했던 것 같다.그런 시간이 누구한테나 있다. 약이 되는 시간이 되고, 저한테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지금까지는 주로 ‘서정적인 캐릭터’ 외엔 확신이 없었는데 스스로가 확신이 생긴 점이 변화라면 변화이다. “예전에는 공감이 되거나 내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은 걸 먼저 봤다. ‘속물들’을 찍고 나서는 자신감이 붙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꿈꿨던 유다인의 현재 꿈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덧붙여 흔들리지 않고 오래 오래 일하는 배우를 소망한다.

“이제는 ‘연기 잘하는 배우’보다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작품에 나오든 다 다른 것 같아’ ‘유다인이 나오는 작품은 재미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 관객들에게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면서 흔들리지 않고 오래 오래 일하고 싶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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