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런정페이 회장이 세운 화웨이는 유선전화 교환기를 수입해 파는 업체였다. 자본금 360만원에 직원 5명이 전부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매출이 20억달러(약 2조3,200억원) 수준이었던 화웨이는 지난해 무려 1,05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8%로 삼성전자(21%)에 이어 2위이고, 통신장비 분야에서는 30%에 육박해 전 세계 1위다. 대리점 수준의 회사가 30여년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 기업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화웨이의 성공 뒤에는 실제로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웨이가 대출과 세제혜택 등으로 최소 750억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1988년부터 20년간 300억달러의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라인)를 받았다. 이와 별도로 수출금융과 대출로 160억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2009년 화웨이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감시 시스템 사업을 따냈을 때도 중국수출입은행은 화웨이를 위해 파키스탄에 사업자금 1억2,470만달러를 빌려주면서 20년 만기에 연 3% 이자 대부분을 면제했다.
화웨이는 2008~2018년 정보기술(IT) 분야를 키우기 위한 중국 정부의 세제 인센티브로 250억달러를 아꼈다. 이외에 16억달러의 재정지원과 20억달러 규모의 토지매입 비용 할인도 받았다. 2014~2018년 광둥성 둥관에 리서치캠퍼스를 짓기 위해 12곳이 넘는 정부 소유 택지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주변 시세의 10~50%에 땅을 매입한 것이다.
수치로 계량하기 어려운 지원도 있다. 1998~1999년 화웨이의 지방세 탈세 혐의 관련 소송에 중앙정부가 이례적으로 개입했고, 소송은 몇 주 만에 해결됐다. WSJ는 “이들 지원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며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화웨이가 경쟁업체 대비 30%의 가격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WSJ의 이번 보도는 미중이 내년 1월 초 1단계 무역합의 서명 이후 2단계 무역협상을 진행할 예정인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2단계 협상의 쟁점이 될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 지급을 놓고 벌써부터 양측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보조금이 세계 2위 통신장비 제조업체 핀란드 노키아의 17배(최근 5년 기준)에 달한다는 점과 3위인 스웨덴 에릭손AB는 보조금이 제로였다는 점을 들며 화웨이와 다른 중국 기업들의 불공정성을 강하게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정부는 또 세계 각국의 5세대(5G)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물론 화웨이가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공급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미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자국 기술이 일정 부분 포함된 제품을 화웨이에 팔 수 없도록 한 제재 방안의 기준을 미국 기술 25%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 경우 화웨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
다만 중국 정부의 반발도 클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화웨이의 최대 경쟁사인 미국 시스코 시스템스도 2000년 이후 445억달러의 주 및 연방 보조금과 대출·보조금 등을 지원받았다. 스웨덴도 지난해 기준 기술 및 통신 분야에 100억달러가량의 신용보증을 제공했고 핀란드는 2017년부터 매년 300억달러의 수출신용보증을 내주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인 글로벌타임스는 “화웨이를 배제하면 미국의 2020년은 호황이 될 수 없다”며 미국이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웨이도 “300억달러의 크레디트라인은 10% 이상 사용된 적이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세금은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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