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막걸리협회 임원진이 27일 오후 서울 정부청사 국무총리 집무실을 방문했다.
오래 전부터 예정 된 일정이 아니었다. 이낙연 총리 퇴임 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협회 측에서 총리실에 최근 전해 왔기 때문이다. ‘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내방 이유가 짐작 됐다. 그간 이 총리가 무료 막걸리 홍보대사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준 데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방문 요청이었다.
이 총리를 만난 정규성 한국막걸리협회 회장 등 임원진은 이 총리에게 감사패까지 전달했다. 이 총리도 막걸리를 비롯한 우리 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확대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재임 기간 전국 95종 막걸리 만찬에 선봬
애주불괴천(愛酒不愧天).
당나라 시인 이백의 문장처럼 이 총리에게 막걸리 사랑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타 공인 ‘막걸리 예찬론자’다. 공관 만찬 행사주가 늘 막걸리다.
막걸리를 고르는 기준도 별도로 있다. 초대받은 사람 중 주빈의 고향 막걸리를 내놓는다. 주빈의 출신지가 충북 진천이면 덕산 막걸리, 경북 안동이면 회곡 막걸리, 전남 여수라면 개도 막걸리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2017년 5월 31일 총리 취임 이후 전국 95종 6,500여 병의 막걸리를 만찬 건배주로 테이블에 올렸다.
이 총리가 예전부터 막걸리를 좋아했던 이유는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주처럼 원샷을 하기가 힘들어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마실 수 있는 것도 막걸리를 선호하는 이유라 했다.
이에 더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장, 전남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국산 쌀 소비 촉진을 홍보하기 위해서 막걸리를 열심히(?) 마셨다고 한다.
故 노회찬 의원에게 ‘낙연주’ 선물 받기도
재임 기간 이 총리만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일방적으로 내민 건 아니었다. 역으로 이 총리에게 막걸리를 먼저 건넨 이도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격이다. 지난 2017년 8월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노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을 방문했다. 이 총리가 취임 초기 국회와 내각 소통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공관을 찾은 노 의원은 이 총리에게 깜짝 선물을 내밀었다. 직접 제조한 막걸리 두 병. 심지어 술 이름은 ‘낙연주(洛淵酒)’였다.
이 총리도 노 의원의 고향, 부산에서 만든 금정산성 막걸리를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이 날 만큼은 노 의원이 선물한 ‘단 한 사람을 위한 막걸리’ 낙연주의 압승이었다.
이날 공관 만찬 후 노 의원은 개인 SNS를 통해 “총리께 효모가 살아있는 生(생) 쌀막걸리 드시고 서민이 살 수 있는 민生(생) 정책을 부탁드렸다”며 막걸리를 선물한 이유를 직접 밝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실로 묵직한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던 것이다.
노 의원은 지난해 7월 세상과 아픈 이별을 했다. 빈소를 찾아간 이 총리는 “이번에 공관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좀 붙잡고 몇 잔 더 마실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실제 노 의원과 이 총리는 같은 막걸리 집 단골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막걸리 집 벽면에 ‘인생’을 주제로 짧은 글을 연이어 남긴 적도 있다.
막걸리로 이 총리를 놀라게 한 사람 중에는 외국인도 있다.
몽골의 오흐나 후렐수흐 총리다. 후렐수흐 총리는 지난 3월 이 총리가 울란바토르를 방문했을 때 환영 만찬주로 ‘막걸리’를 준비했다. 몽골에 막걸리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심지어 후렐수흐 총리가 내민 술은 전남 영광의 대마 할머니막걸리였다.
그는 이 총리의 막걸리 고르는 법까지 치밀하게 벤치마킹해 이 총리 고향 막걸리를 만찬 테이블에 올렸다. 당시 깜짝 놀란 이 총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 외교 의전이 몽골에 졌다”면서 후렐수흐 총리의 세심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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