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민원처리를 위해 노원구청을 찾은 A(71)씨는 주차 공간을 찾아 빙빙 돌아야만 했다. A씨는 만성 무릎 통증으로 입구 근처 주차 공간을 찾았지만 몇 바퀴를 돌다 결국 입구와 먼 곳에 차를 대야만 했다.
현행 노원구 조례대로라면 A씨는 입구와 가까운 어르신 우선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시설 관리자나 주차 요원 안내에 따라 입구 가까운 곳에 주차를 안내받아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우선 주차구역을 발견하지도 주차 안내를 받지도 못했다.
**일 노원구청 등에 따르면 올해부터 ‘노인친화도시’를 선언한 노원구는 지난 2017년 9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어르신 우선 주차구역’ 설치를 유도하는 조례가 통과됐지만 지난 2년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원구청, 노원구보건소 등 노인 이용이 잦은 대표적 공공시설에도 어르신을 위한 주차공간은 전무한 상황이다.
노원구의회는 지난 2017년 9월 ‘어르신 우선주차 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는 서울시 내에서도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노원구가 맞닥뜨릴 최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김미영 전 의원이 노인층의 민원을 수렴해 발의한 것이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노원구는 70세 이상 노인의 주차 편의를 위해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우선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구청장은 우선주차구역의 설치 면수 등 세부기준을 정하고 노인 차량임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를 발급하는 등 노인들의 주차 편의를 위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후 조례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조례가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간 노원구 내 공공시설 가운데 어르신 우선주차 구역이 설치된 곳은 없다. 특히 구청이나 보건소처럼 온라인 민원 해결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건강 상 이유로 노인 방문이 잦을 수밖에 없는 공공시설에도 어르신 우선주차 구역은 요원한 상황이다. 지난 2년간 구청은 해당 조례를 위한 예산을 책정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올해 들어 노인친화도시를 표방한 노원구의 행보와도 대비된다. 노원구는 올해 ‘어르신 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어르신 친화도시팀’을 신설하는 등 27개 사업에 세금 33억1900만원을 투입한다. 이를 위해 ‘어르신 친화도시 조성 자문위원회’ 구성하고 이를 위한 관련 조례 제정도 추진했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은 “평균 연령이 높아지며 노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게 중요한데 해당 정책이 사문화된 건 아쉽다”며 “여러 정책을 시행하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원구는 노인과 장애인 비중이 높아 이들을 향한 선심성 정책이 난립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것들 때문에 필요한 정책이 묻혀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노원구청은 “기존에도 주차난이 심해 민원이 많았다”며 “노인 우선 주차구역까지 설치할 경우 주차난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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