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날씨가 추워지면서 무료급식 줄이 더 길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료급식의 한 거점인 탑골공원에는 하루에 300명 이상 몰리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지인의 얘기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분들 대부분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분들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갑작스러운 경제적 추락이 비등한 우리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정부는 노후를 대비한 개인연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50세 이상 장년층의 연금저축 세액공제 한도를 개인형퇴직연금(IRP)을 포함해 기존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다만 50세 이상이라 해서 모든 사람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고, 연간 총급여가 1억2,000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는 제외된다. 적용시기도 향후 3년만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를 넘어 초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2026년이면 국민 10명 중 2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가 세제개편을 통해 개인 스스로 노후준비에 나서도록 유인하는 정책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적용시기 한정이나 소득금액에 제한을 둔 부분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외에서도 국가재정을 통한 복지급부는 급속히 줄여나가는 추세이며, 개인이 자발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금보험법 401K 규정에 의해 은퇴가 임박한 50세 이상 소득자에게는 세액공제 한도를 더 높게 적용하고 있다. 50대는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생기는 시기다. 자녀교육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한편, 직장에서는 부서장·임원 등으로 소득이나 연봉도 최고치를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있는 이 시기를 놓치면 이 세대도 나중에 정부의 구제(재정지원)가 필요해질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노후준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50대는 10명 중 6명이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퇴직 후 충분한 연금이 기대되는 근로자도 극소수인 7%에 불과하다. ‘연금들면 부자’라는 이분법적 정책논리가 준비할 역량이 있는 중간층 50대마저도 동기를 잃게 만들고 있다. 이들의 보유자산도 집 한 채 정도의 실물자산이어서 실질적인 노후자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15년 한국재정학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연금보험 세제지원에 따른 미래의 재정절감승수는 8.05로 나타났다. 지금 1,384억원의 세제 혜택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1조1,137억원까지 재정부담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세제혜택을 주저하다 보면 나중에 재정부담이 8배로 불어난다는 경고를 의미한다. 세제를 통한 노후준비 지원이 초고령화시대의 재정절감의 가장 훌륭한 수단(tool)이라는 방증이다.
지금의 50대는 매년 100만명씩 생겨나 2018년 현재 860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50대가 10년 내 은퇴해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는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게 남아 있다. 노인이 되는 것은 비참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나이답게 살 수 없는 사람이 비참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 준비되지 않은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난이다.
50대는 노후준비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노인빈곤율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들 50대의 노후도 위험에 빠지도록 방치돼서는 안 될 것이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미리 고치는 정부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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