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여대에서 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잇따라 게시되는 등 일부 교수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학생들이 사례를 수집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30일 동덕여대 학내 단체들에 따르면 중앙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성인권위원회는 지난 27일부터 학내 교수·강사의 혐오 표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재학생과 졸업생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설문조사는 여성 혐오, 인종 차별, 장애 혐오 등 학생들이 경험한 교수·강사의 혐오 표현 사례를 파악하고, 학교에 전할 요구사항 등 의견을 수렴하는 항목으로 구성됐다. 비대위와 성인권위원회는 “교수·강사의 인권 감수성 부족으로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인지했다”며 “관련 사건 해결과 사전 예방을 위한 기초자료 구축을 위해 설문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말 경 이 학교에서는 한 남성 교수의 발언이 여성 혐오 성격을 띤다며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 따르면 A교수는 강의 도중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 시집을 가지 않겠냐. 애를 좀 낳아라. 나는 출산율이 너무도 걱정된다”, “하얀 와이셔츠 입은 오빠들 만나야지. 오빠들 만나러 가려고 수업 빠져도 돼” 등의 발언을 했다.
이튿날 게시된 다른 대자보에서는 또 다른 B교수가 “왜 강의자료를 다들 안보나. 야동(야한 동영상)을 올려줘야지 보나”라는 성희롱성 발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학생들은 대자보 주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SNS에 ‘#1125혐오표현해방’ 해시태그를 단 글을 올려 의견과 경험을 공유했다. 학내 단체나 개인의 연대 대자보도 이어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시태그와 함께 “여교수님, 남교수님 가릴 것 없이 ‘화장도 좀 하고 꾸미고 다녀라’고 말하고 ‘여성적인’, ‘남성적인’ 같은 성별 이분법적 발언을 자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교수님들이 전반적으로 사고를 바꿨으면 좋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일부 남성 교수들은 대자보 내용에 반박하는 등 학생들의 문제 제기에 대응했으나 논란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A교수는 반박 대자보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을 설명하면서 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이며, ‘오빠’ 언급은 사정이 있어도 수업에 아예 결석하지는 말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반성 없는 당신을 규탄한다”는 항의 포스트잇을 붙였다. 또 다른 남성 교수는 강의 도중 학생들의 대자보 내용을 두고 “남교수는 여대에서 죄인이지 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성인권위원회 등은 “지난해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강제추행 등 사건으로 인권을 보장하라는 구성원의 요구가 커졌지만 학교는 피해자 보호와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본부와 모든 교수·강사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차별을 답습했던 동덕여대의 현 상황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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