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이 지휘자와 악보 없이 만들어 내는 선율로 해외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1급 시각장애인 이상재(52·사진)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는 새해 4월 열리는 미국 미시간 국제음악제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가 개막공연 악단으로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에 이어 두번째다. 새해 20회를 맞는 권위있는 해외음악제에 시각장애인 관현악단이 두번이나 초청받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이 단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사는 동안 실명(失明)탓에 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 해준 주변 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로 전하고 싶다”며 “그것이 사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이 2007년 창단한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12년동안 국내외에서 총 450여회 연주회를 열었다. 한해 40회 꼴이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두번의 공연을 비롯해 런던, 모스크바, 도쿄 등 해외 연주회 이력도 화려하다. 2011년 당시 카네기홀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악단 공연은 카네기홀 개관 120년만에 처음이었다.
“단원 20명중 비장애 연주자가 7명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연주라고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려면 끝없는 반복 밖에 없습니다. 볼 수 없으니 점자악보를 통째로 외우고 드럼스틱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지휘자를 대신하는 방식으로 연습합니다. 수백번의 연습을 통해 합주곡 한 곡을 완성하는 그 열정과 노력에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7살 때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에게 삶의 버팀목은 음악이었다. 음악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올라 1997년 미국 3대 음악대학인 피바디 음대에서 개교 이래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로 명성을 얻은 그가 창단한 오케스트라는 처음엔 주목 받지 못했다. 음대를 졸업하고 실력이 뛰어나도 일반 관현악단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을 모았다. 그러나 지원,후원이 거의 전무했다. 정부나 지자체로부터도 한 푼 지원받지 못했다.
이 단장은 “빚 내가며 대관료, 교통비 등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며“초기엔 생활고 때문에 몇몇 연주자가 오케스트라를 떠나 전업 안마사를 선택하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후원단체로 지정된후 악단 경영에 숨통이 트였다. 그는“상당수 공연을 정부지원을 받아 이어가고 있지만 기업의 정기적 후원이 전무해 아쉽다”며“장애예술인 지원을 확대해 젊은 음악가들이 생계 때문에 음악의 꿈을 접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후배 연주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며 “단원들이 행복하고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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