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15년 만에 한국의 클래식 팬들을 만난다.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 과감한 색채가 담긴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극과 극의 평가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혹은 괴짜 피아니스트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를 다음 달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으로 먼저 만났다.
포고렐리치는 오랜만에 한국을 찾는 소감에 대해 “한국은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긴 나라”라며 “많은 이들이 음악에 쏟는 존경과 헌신에 감탄했다. 이번에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연은 오는 2월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5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그는 라벨 밤의 가스파르, 바흐 영국 모음곡 3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1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공연에 대해 “저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고,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한 젊은 관객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저의 음악 세계만이 갖는 다양한 매력을 만나 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포고렐리치는 1976년 여류 피아니스트이자 스승인 알리자 케제랏제를 사사한 후 그녀와 결혼했지만 케제랏제는 199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케제랏제와의 사별 후 깊은 우울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사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포고렐리치는 케제랏제에 대해 “그보다 더 나은 피아니스트를 들은 적도, 알게 된 적도 없다. 그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며 여전히 깊은 감정을 드러냈다.
포고렐리치는 1980년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지극히 편파적인 결과”라고 강하게 항의하며 심사위원직을 사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포고렐리치는 어느덧 60대로 접어들었다. 당시와 지금의 포고렐리치가 음악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묻자 그는 “크게 변한 점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믿는다”며 “음악은 나에게 항상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악이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 발견되고 또 변화하며, 어떤 조각들은 변하지 않기도 한다”며 “제가 그 조각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할 때가 있고 때론 그대로 있기도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포고렐리치는 지난해 24년 만에 음반 활동을 재개하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등이 수록된 새 음반을 발매했다. 그는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던 곡들로 꾸렸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인생 절반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연주한 곡”이라고 소개하며 “대중들에게 이런 해석도 있다는 걸 인지시킬 수 있는 개인적인 공헌을 남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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