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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한국과 독일은 무엇이 다른가

정상범 논설위원

IMF 압박에도 獨은 재정균형 고수

우리는 정책실험에 선심성 돈풀기

“국민세금으로 선거운동 벌이는 격”

선택과 집중으로 성장활력 살려야





문재인 대통령이 그저께 발표한 신년사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며 내놓은 방책은 재정 투입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일자리에 역대 최대 예산을 투입하고 전방위적인 정책 노력을 기울인 결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자평했다. 청년·여성·어르신에 이어 40대 일자리까지 책임지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역 경제에 아낌없는 금융과 세제 지원도 약속했다. 그러면서 세금을 올리고 대기업을 옥죄면서 혁신경제를 일으키겠다고 했다. 국가부채나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 없이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정을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확대재정을 밀어붙이는 데 동원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다. IMF는 세계경기 둔화를 경고하며 독일·네덜란드와 함께 한국을 콕 집어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첫 공식 연설에서 한국을 거론했을 정도다.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 둔화에 대응할 여력이 떨어지는 만큼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똑같이 IMF 압박을 받는 독일은 정반대다. 국제기구나 주변으로부터 아무리 거센 압박이 들어와도 오불관언이다. 엄격한 균형재정 원칙을 세우고 미래를 위한 비상금이라며 경기부양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2023년까지 중기 재정계획에서는 적자국채 발행액 제로(0)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재정흑자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독일은 아예 2009년 개헌을 통해 헌법 제109조와 제115조에 재정준칙을 마련하고, 재정 건전화를 공동체의 법적 기본질서이자 정부가 달성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못 박았다. 채무준칙은 원칙적으로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뤄야 하며 재정적자 증가율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험한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독일 내에서도 정치권으로로부터 재정흑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는 어떤가. 요즘 지역마다 봇물처럼 터지는 복지 요구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청년수당이나 농민수당·노인수당처럼 현금성 복지제도를 도입하자 왜 우리만 빠졌느냐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4월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곳곳에 돈이 뿌려질 것이다. 과거에는 출마자가 돈을 썼다면 이제는 국민 세금으로 대놓고 선거운동을 벌이는 격이다. 이래저래 현금복지가 부르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확장적 재정’이 최고 정책상으로 뽑혔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과거 국민 세금 지키기에 사활을 걸었던 예산당국의 결기를 돌이켜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한마디로 재정규율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얘기다.

물론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잘못된 정책실험을 메우느라 재정이 투입되는 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돈을 쓰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IMF는 재정확대를 권고하면서도 노동유연성을 높이고 서비스 부문 규제와 가격 통제를 없애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선심성 돈풀기가 아니라 중장기 성장 활력으로 이어지는 정책을 내놓아야 결실을 본다는 충고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는 나라 살림에 시름이 깊은 황제에게 “무진장한 보물이 폐하의 영토 안에서 깊이 묻힌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며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황제가 유혹에 넘어가 ‘천국에서 보내준 잎’이라며 대량의 지폐를 발행하자 술집에서는 ‘황제 만세’ 찬사로 넘쳐났다. 하지만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이내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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