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닛산 측이 공모해 자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자동차 회장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입은 없었다며 ‘아베 개입설’을 일축했다.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이례적으로 곧바로 법무상이 반박에 나서며 대응 강도를 높였다.
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이 하루 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닛산과 검찰의 공모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인 아베 총리가 관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닛산 관계자들의 실명만 밝히고 정부 인사 명단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당초 곤 전 회장은 닛산과 르노 간 합병추진 과정에서 닛산 경영진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자신을 쫓아내려 했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제거하려던 일본 정부 인사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특히 장기집권 중인 아베 총리가 재계에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곤 전 회장의 축출에 아베 총리 측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와 외신들은 곤 전 회장의 정부 측 인사 실명 공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같은 곤 전 회장의 태도 변화는 정부 측 인사 실명 공개가 자칫 레바논과 일본 간 외교갈등으로 확대되면서 일본 정부가 레바논 정부에 곤 전 회장의 송환 등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곤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양국의 알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긴장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도 지난 8일 여당 중진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곤 전 회장에게 부담감을 느끼며 “본래 닛산 안에서 정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모리 마사코 일본 법무상은 이날 “주장할 것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공정한 형사사법 제도하에서 정정당당하게 법원의 판단을 받기를 강력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인 이날 새벽1시께(현지시각)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출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에 일본의 법 제도와 운영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고의로 퍼뜨리는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날 오전에도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곤 전 회장의 비판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추상적 내용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일본 정부가 반박에 나서자 레바논 검찰은 이날 곤 전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AP통신은 이번 조치가 곤 전 회장의 움직임을 제한하지만 그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 문제를 놓고 일본과 레바논 간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으며 실망스럽다”는 닛산 자동차 직원들의 말을 전하며 곤 전 회장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곤 전 회장의 이러한 행동은 어려움을 겪는 닛산의 기업 이미지와 실적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곤 전 회장의 주장에 날을 세웠다. 곤 전 회장의 행보에 대한 일본 언론의 시각에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지만 외신과 국제사회에서는 일본 사법체계가 국제기준에 맞는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유죄판결 비율이 99%에 가까운 일본의 사법 시스템이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라고 지적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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